[데이터뉴스=유성용 기자]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역사, SK하이닉스 주가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굴곡을 반영하며 흥망성쇠 고비마다 영욕의 세월을 방증한다. 2003년 초 135원까지 떨어지며 ‘동전주’로 전락했던 SK하이닉스는 지금 7만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며 코스피의 핵심 종목으로 부상했다.
치킨게임이 사실상 종료된 반도체시장에서 일본 도시바 인수전에서도 우위를 점한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어떤 성장을 추가해갈 지 궁금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4일 종가기준 6만5800원의 주가를 형성, 워크아웃 이후 채권단의 21대1 감자가 이뤄지기 전인 2002년 말(280원)과 비교해 15년 만에 235배 증가했다.
2003년 3월 26일 감자로 주가가 135원으로 떨어지며 동전주로 불렸던 시기와 비교하면, 증가폭이 무려 487배에 달한다.
SK하이닉스가 주식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12월 모태인 현대전자가 공모가 2만 원으로 상장하면서 부터다. 그해 말 주가는 2만3000원으로 오름세로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7년 현대전자가 내 놓은 PCS폰 '걸리버'가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주가는 6월 한때 4만9600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그해 말 주가는 2만1500원으로 마감했고, 1999년까 2만~3만 원대를 오갔다. 2000년에는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쳤고, 4025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에 현대전자는 2001년 3월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꾸며 쇄신에 나섰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실패했다. 곧 이은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미국 마이크론사에 피인수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가까스로 독자생존의 길을 택한 이후, 2003년 채권단의 재무구조 개선요구에 21대1의 감자를 진행해야 했다. 2002년 말 주가는 280원이었는데, 첫 상장 후 6년 만에 주가가 공모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3년 3월 26일 감자로 거래정지 되기 전 마지막 주가는 135원까지 추락했다.
그렇다고 하이닉스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매매정지가 풀린 첫날 거래량은 1200만주를 넘었고, 4월 17일에는 4500만주, 18일에는 8760만주 이상을 기록했다.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지난 6월 평균 일 거래량인 400만주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6월 한 달 동안 거래총량도 8400만 주로 당시 하루치보다 적다.
실제 감자 후 하이닉스는 2003년 3분기부터 2007년 3분기까지 16분기 동안 연속 흑자를 내며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2003년 말 5600원이던 주가는 2004년 1만1650원, 2006년 3만6450원으로 올랐다. 2005년 7월에는 워크아웃도 졸업했다.
좋은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고, 다시 위기가 닥쳤다. 2007년 4분기부터는 7분기 연속 적자로 분위기가 반전한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덮치며 그해 말 주가는 6700원으로 다시 한 번 곤두박질 쳤다.
하이닉스는 2009년 2만3150원으로 주가가 다소 회복됐지만 대외 악재 속에서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2011년(2만1950원)까지 2만 원 초반 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2년 2월 SK그룹에 편입되며 반등의 기회를 다시 갖게 됐다. SK 계열사로서 첫해인 2012년 말 주가는 2만5750원으로 여전히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2013년 박성욱 부회장 체제가 갖춰지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2013년 종가는 7년 만에 3만 원대에 마감됐고, 2014년에는 처음으로 장 종료시점 4만 원대를 기록했다.
박 부회장 취임 후 SK하이닉스는 지난 4년여 동안 실적과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괄목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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