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삼성전기, MLCC 넘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AI’ 정조준

연평균 18% 성장 전망, 자율주행·로봇·항공우주까지 수요 확대…글로벌 기업에 1.5조 공급계약, 시장점유율 확대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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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삼성전기, MLCC 넘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AI 정조준

▲삼성전기 실리콘 캐패시터 샘플. 기판 내부에 넣는 임베딩(Embedding) 타입(왼쪽)과 반도체 기판 아래 공간에 배치하는 LSC 타입 / 사진=데이터뉴스


“삼성전기는 반도체 공정에 능숙하고, 컴포넌트 사업도 잘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할 수 있는 게 실리콘 캐패시터입니다. 그래서 시장이 열린 지 얼마 안 됐지만, 성과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김원기 삼성전기 실리콘캐패시터개발그룹장)

삼성전기는 지난 11일 서울 태평로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실리콘 캐패시터’ 신사업을 소개했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인공지능(AI) 서버, 고성능 컴퓨팅(HPC), 광통신, 자율주행차, 항공우주 장비 등 고속·고밀도 전자장치의 전력 안정성을 높이고 부품 집적도를 극대화하는 핵심 소자다. 

캐패시터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반도체가 필요로 할 때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회로에서 각 부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도록 노이즈를 줄여준다. 데이터센터 등은 여러 코어가 병렬 처리를 통해 속도를 높이는 구조로, 각 코어가 서로 독립적으로 잘 동작하는 게 중요하다. 

[현장] 삼성전기, MLCC 넘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AI’ 정조준

▲김원기 삼성전기 실리콘캐패시터개발그룹장이 지난 11일 열린 제품 학습회에서 실리콘 캐패시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기


김원기 그룹장은 아파트 물탱크가 물을 저장했다가 사용처에 따라 분배하는 것처럼 캐패시터는 전기회로에서 전기 에너지를 모아놨다가 각 부품의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설거지를 해도 영향이 없는 것처럼 노이즈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대표 제품인 다층세라믹캐패시터(MLCC)는 세라믹 시트를 여러 층으로 쌓아 전기 에너지를 저장한다. 대용량과 고전압 구현에 유리하지만, 두꺼워지는 한계가 있다. 

반면, 실리콘 캐패시터는 D램(DRAM) 반도체 제조에 활용되는 ISC 공정으로 실리콘 웨이퍼에 깊은 구멍들을 파내 표면적을 넓히고, 그 안에 유전체와 전극을 형성해 작은 면적에 높은 전기 용량을 실현한다. 단층인 실리콘 캐패시터는 MLCC보다 얇아 기판 아래나 패키지 내부(Embedded)에 적용할 수 있다. 

[현장]삼성전기, MLCC 넘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AI 정조준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구조 모형. 연분홍색 부분은 실리콘 웨이퍼로, 미세 구멍이 파여있다. / 사진=데이터뉴스


우수한 고주파 특성과 안정성도 실리콘 캐패시터의 강점이다. 고성능 반도체는 고주파 영역에서 발생하는 신호 노이즈가 증가한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MLCC보다 100배 이상 낮은 저항(ESL)으로 고성능 CPU·GPU에서 발생하는 신호전달 손실을 최소화하고, 노이즈를 제거하는 데 유리하다.

온도와 전압 변화에 따른 성능 안정성도 장점으로 꼽힌다. MLCC는 전압이나 온도가 바뀌면 유효 용량이 변할 수 있지만, 실리콘 캐패시터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작다. 

김 그룹장은 “특히 위성처럼 뜨거운 환경과 차가운 환경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응용처는 온도에 따라 성능이 바뀌면 시스템 설계가 어려워진다”며 “실리콘 캐패시터는 (성능이) 일정하기 때문에 위성 쪽에서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리콘 캐패시터와 MLCC와는 상호 보완적 관계다. MLCC가 대용량과 고전압 영역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실리콘 캐패시터가 낮은 전압에서 고용량과 초박형 설계가 필요한 영역을 보완하는 식이다. AI 서버와 같은 고성능 시스템에서는 MLCC와 실리콘 캐패시터를 함께 적용하기도 한다.

[현장]삼성전기, MLCC 넘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AI 정조준

▲MLCC와 실리콘 캐패시터 적용 영역 비교 / 자료=삼성전기 유튜브


사업방식도 차이가 있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MLCC와 달리 전 세계적으로 규격화된 성능이 없고, 고객이 요구하는 사양을 만들어주는 사업에 가깝다. 먼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후 제품 레이아웃을 설계하고, 파운드리에서 웨이퍼를 제작한 뒤 백앤드 공정과 테스트를 거쳐 납품하는 구조다.

삼성전기는 이 지점에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반도체 공정에 대한 이해와 컴포넌트 설계 역량이 필요한데, 삼성전기는 두 분야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패키지기판, MLCC, 실리콘 캐패시터를 함께 제안할 수 있다는 점도 차별점으로 꼽았다. 

김 그룹장은 “고객도 MLCC를 쓸지, 실리콘 캐패시터를 쓸지, 기판 안에 넣을지, 기판 밖에 붙일지를 협의해야 하는데, 삼성전기는 세 사업부가 함께 움직여 고객에게 필요한 조합을 제안할 수 있다“”며 “한 가지 사업만 하는 회사는 이렇게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리콘 캐패시터의 수요처도 넓어지고 있다. 초기 시장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산업용 AI 서버가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했다. 앞으로 자율주행, 광통신 등으로 응용분야가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기에 따르면,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실리콘 캐패시터 시장 연평균 성장률(CAGR)이 18%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기는 지난달 글로벌 대형 기업과 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실리콘 캐패시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를 발판 삼아 고용량, 다기능 실리콘 캐패시터 라인업을 확장하고 글로벌 고객 다변화를 추진해 시장 점유율 확대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박혜연 기자 phy@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