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골드러시’광풍, 증권 이어 이젠 채권으로

이코노미스트, “끝까지 살아남을 하이퍼스케일러 고르는게 관건”

주식시장을 점령한 인공지능(AI)의 광풍이 이번에는 채권시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AI 투자 붐이 그동안 주가 급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다가, 이제는 회사채 시장의 규모·구조 자체를 바꾸는 단계로 진입했다. 19세기 미국과 유럽의 철도산업이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시장을 키웠던 것처럼, 오늘날 거대 기술기업들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빚을 내고 있다.

이는 신용 스프레드(가산금리), 국채 수익률, 글로벌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나아가, 향후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가 ‘AI 기업의 신용위험(Credit Risk)’이 될 수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경고하고 나섰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 인프라의 급속한 확산은 대개 채권시장의 호황을 동반한다. 19세기에 대서양 양안에서 기업 신용을 위한 유동성 시장이 형성된 것은 철도산업의 급격한 성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토지 매입, 선로 부설, 화물 운송 등 막대한 투자 수요를 가진 철도 운영사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업금융은 소규모 은행들의 영역이었다. 철도 등장 이후 기업금융은 국가 단위로, 점차 국제단위로 채권시장과 결합하게 됐다.

이번 AI를 둘러싼 기술 인프라 열풍 역시 채권시장의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1월 이후 메타, 엔비디아, 오라클은 AI에 대한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 250억 달러(약 37조 6875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이들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금액보다 많은 수준. 

스페이스엑스 역시, 일론 머스크의 우주·로봇 사업이 지난 6월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860억 달러(약 129조 5160억 원)에 더해 250억 달러의 채권을 추가로 발행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수많은 AI 워크로드를 운영하는 아마존은 3월에 370억 달러(약 55조 6998억 원)어치 채권을 팔았다. 

알파벳은 2월 영국에서 55억 파운드(약 11조 1464억 6500만 원) 규모의 채권 발행 중 일부로 100년 만기 10억 파운드(약 2조 266억 3000만 원)짜리 채권을 발행했다. 알파벳은 미국 본토에서 200억 달러(약 30조 1380억 원)를 조달한 지 며칠 만에, 스위스 프랑화 채권도 추가 발행했다.

지난해 미국의 회사채 발행액은 2020년 세웠던 역대 최고치에 육박했다. 올해는 AI 덕분에 이 기록이 경신될 것이 확실시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미국 채권시장에서 AI 관련 투자적격 등급 채권이 3500억~4000억 달러(약 527조 1700억~602조 4800억 원) 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2026년 미국에서 발행될 전체 우량 달러 표시 채권 2조 3000억 달러(약 3464조 2600억 원)의 약 1/5에 해당한다. 추가로 500억 달러(약 75조 3400억 원)가 AI 프로젝트와 연계된 정크본드(고수익 채권)에서 나올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러한 규모는 왜 국제결제은행(BIS)이 “AI 프로젝트들이 투입된 부채를 상환할 만큼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채권 투자는 때때로 “무엇을 살지가 아니라 무엇을 피할지를 선택하는 소극적 예술”로 묘사된다. 채권 투자자들은 이제 얼마나 많은 것을 ‘피해야’ 하는가?

어떤 면에서, AI 채권 발행 열풍은 회사채 시장을 이전보다 조금 더 안전해 보이게 만든다.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미국 5대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거인들의 총부채는 3월까지 6개월 동안 2288억 달러(약 344조 6414억 4000만 원) 증가했다. 이는 과거 2분기 연속 증가치보다 5배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하이퍼스케일러 상위 4곳은 강력한 신용 등급을 보유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이익을 몇 년간 창출해 왔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채는 미국 정부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5곳 중 가장 규모가 작고 수익성이 낮은 오라클만이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중간 등급인 ‘B’를 받을 뿐이다(물론 최근 미국 회사채 발행사의 절반 정도는 이런 등급을 받는다).

보통 부채 발행이 급증하면, 안전한 국채 대비 위험도를 측정하는 ‘회사채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거대 기술 기업들의 높은 신용도 덕분에 평균 스프레드는 0.8%포인트 수준으로, 최근 2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해석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안전한 부채, 그리고 이 거대 기술 기업들과 관련된 위험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채권 사이에서 투자자들은 차별화를 시작했다. 지난 4월 블랙스톤 소유의 큐티에스 데이터센터는 미국 조지아주에 거대 서버 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46억 달러(약 6조 9271억 4000만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서버의 고객이 될 예정이다. 초기에는 이 채권의 수익률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일 등급 채권보다 1.1%포인트 높았으나, 현재 스프레드는 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위험한 채권의 발행 급증이 더 큰 우려 사항처럼 보인다. 상위 칩 용량을 대여하는 ‘코어위브(CoreWeave)’의 20억 달러(약 3조 110억 원) 채권 발행으로 시작된 정크본드 물결은 커지고 있다. 코어위브와 같은 네뷸리우스, 아이런 등 소위 ‘네오 클라우드’ 기업들 역시, 올해 수십억 달러(수 조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하지만, 안전한 채권과 위험한 채권의 구분은 오도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금융 불안은 투자자들이 위험하다고 이미 인지하는 자산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믿는 자산 주변에 쌓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정크본드의 등장은 시장의 적응(자정 작용) 신호일 수 있다는 것.

1873년 공황 당시 철도회사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인 불황이 초래됐다. 오늘날 그런 대재앙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실 채권’을 피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는 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AI 혁명은 너무나 빠르게 진행돼, 일부 초기 승자가 이미 패자가 됐다가 다시 승자로 바뀌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채권 투자자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소극적 예술’을 발휘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누가 최종 승자가 돼, 10년, 30년, 혹은 알파벳처럼 100년 후 만기가 돌아올 때 채권을 상환할 수 있을지 가려내는 일이 그것이다.

[ⓒ데이터저널리즘의 중심 데이터뉴스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