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 과정에서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가 본격 상용화되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 인하, △카드론 총량 관리, △여전채 금리 상승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자, 데이터 사업의 수익화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신용정보회사·데이터 회사·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에게 카드를 발급하고, 가맹점 결제를 중개하는 전통적 비즈니스에서 벗어나려 한다.
국민카드는 지난 8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사업목적에 ‘기업신용조회업(기업정보조회업무)’을 추가했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로부터 기업정보조회업 예비허가를 받은 데 따른 후속 조치다. KB국민카드는 정관 변경 등을 마무리한 뒤 본허가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정보조회업은 기업·법인의 신용·재무·거래 관련 정보를 수집·통합·분석해 금융회사나 기업 등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특히 카드사가 보유한 가맹점 매출 데이터와 외부 공공정보 등을 결합하면, 기존 신용정보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영세·중소기업의 실제 사업 상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카드 회사의 데이터에는 결제금액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소비자의 ‘실제 경제활동’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느 지역에서 매출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어떤 시간대에 소비자가 몰리는지, △어떤 업종의 경쟁이 심한지, △고객의 재방문율은 어떤지, △특정 지역의 소비 수요가 증감하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를 분석하면 소상공인에게는 △‘어디에 가게를 열 것인가’부터 △‘언제 할인행사를 해야 하는가’, △‘어떤 고객에게 쿠폰을 제공해야 하는가’, △‘재고를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가’까지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가맹점별 매출 비교, △상권별 성장률, △신규 출점 후보지 분석, △판촉 효과 측정 등의 서비스가 가능하다. 카드사가 결제를 처리하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일 뿐 아니라, 가맹점의 매출과 생존율을 높이는 경영 파트너로 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수료는 줄고, 카드론도 못 늘려
카드사들이 데이터 사업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본업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 323만5000곳 가운데 309만4000곳, 즉 95.7%가 영세·중소가맹점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매출 규모에 따라 0.4~1.45%다. 결제금액이 늘어도, 카드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수익이 그만큼 증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카드론 역시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카드론의 확대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은행처럼 예금을 받아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여전채 등 시장성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카드사 입장에서는 ‘결제액을 더 늘리는 것’으로는 수익성을 높이기 어려워졌다. 국내 카드사들은 결제를 ‘데이터를 확보하는 출발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BC·삼성카드, 기업정보조회업 선점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간 곳은 비씨카드와 삼성카드다. 비씨카드는 2024년 5월 카드사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정보조회업 본허가를 받았다. 삼성카드도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로부터 기업정보조회업 본허가를 취득했다.
비씨카드는 이미 개인사업자 대상 ‘비즈 크레딧(Biz Credit)’을 통해 카드 결제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가맹점 원장과 카드 매출, 연체정보, 상권정보, 업종정보, 공공정보 등을 결합해, 개인사업자의 신용점수와 매출 추정치, 휴·폐업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이 모델은 기업정보조회업의 핵심적인 사업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매출이 일정하게 발생하고 고객 재방문율이 높은 식당이라면, 기존 금융정보가 부족하더라도 실제 사업의 안정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고객 이탈이 심해진 사업자라면 금융기관이 조기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재무제표가 없는 자영업자’의 실제 사업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활용하는 것이다.
삼성카드도 데이터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카드의 ‘데이터 랩(Data Lab)’은 카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권·소비·관광 트렌드 등을 분석해, 기업과 공공기관에 제공한다. 현재 상권 유형, 지역별 소비 트렌드, 성별·연령별 소비 패턴 등 다양한 데이터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전문기관을 통해 산업 간 데이터 결합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신한카드 “데이터 매매 시장” 만든다
신한카드는 결제·통신·유통·모빌리티 데이터를 연결하는 플랫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케이씨비 등과 구축한 ‘그랜데이터(GranData)’를 통해 카드·통신·신용정보 등 서로 다른 데이터를 결합하는 개방형 데이터 협업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이마트 등으로 참여 기업도 확대했다.
특히, 결제 인프라 자체를 외부 기업에 제공하는 ‘서비스로서의 결제(PaaS·Pay as a Service)’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카드사가 직접 카드를 발급하지 않고, 다른 기업의 결제·정산 업무를 대신 처리해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카드 데이터를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이 활용하도록 만들려 한다.
현대카드는 아예 ‘AI 회사’로 변신
현대카드의 전략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현대카드는 자체 개발한 초개인화 인공지능(AI)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를 일본의 대형 카드사인 에스엠씨씨(SMCC)에 수백억원 규모로 수출했다. UNIVERSE는 고객의 행동·성향·상태 등을 분석해 개인별로 최적화된 마케팅과 고객관리 등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AI 플랫폼이다.
현대카드는 이를 단순한 시스템 판매가 아니라 ‘금융회사에서 테크기업으로의 업의 전환’으로 규정하고 있다. 카드발급 파트너(PLCC)들과 구축해온 데이터 동맹과 고객 분석 역량을 하나의 기술 플랫폼으로 만들어 외부 금융회사에 판매하는 것이다.
금융권은 이를 카드업의 미래가 어디로 향할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드사는 그동안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하고, 가맹점에서 결제를 승인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결제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그 기술 자체를 다른 금융회사와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금융’도 데이터 사업의 핵심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기반 금융이다. 은행은 대출 심사 과정에서 재무제표와 담보, 신용정보 등을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자영업자 상당수는 담보가 부족하고 매출 변동성이 크며 정형화된 재무정보도 충분하지 않다. 카드사는 해당 사업장의 실제 매출 흐름을 알고 있다. 월별 매출이 어떻게 변했는지, 특정 고객의 재방문율은 어떤지, 매출 취소율은 높은지, 특정 계절에 매출이 급증하는지, 주변 상권보다 경쟁력이 있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이를 세무자료·공공정보·계좌거래 정보 등과 결합하면 사업자의 상환능력을 훨씬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업자에게는 적정 금리의 운전자금을 공급하고, 매출 급감 등 위험 징후가 나타나는 사업자에게는 조기경보나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신용평가·데이터 분석 수수료와 금융상품 판매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고, 소상공인은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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