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식 제로페이’ UPI 혁명 10년, 국가 디지털 지급결제의 중추로

이코노미스트, “월 240억건 거래의 운영비로, 수수료 유로화가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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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로페이와 비슷한 인도의 공공 디지털 결제망 ‘통합 결제 인터페이스(UPI·Unified Payments Interface)’가 출시 10주년을 맞았다. UPI는 지난 10년간 인도의 결제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UPI는 현재 월 240억 건, 거의 30조 루피(약 432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거래를 처리하는 국가적 결제 중추로 성장했다. 반면, 제로페이는 한국에서 신용카드와 민간 간편결제 서비스가 시장을 선점한 상태에서 출시돼 사용자와 가맹점의 침투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UPI의 결제방식은 제로페이처럼, 큐알(QR)코드를 이용하고 은행 계좌간 직접 송금/결제 (Account-to-Account)가 가능하며 수수료가 없다. 인도의 국가 표준으로 지정돼, 구글 등 민간 핀테크 거물들까지 모두 이 표준에 참여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UPI는 인도의 결제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제 ‘무료 결제’라는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UPI코드는 인도의 뭄바이 해변 노점상에서 코코넛 위에 붙어 있다. 델리의 간식 가게에서는 인도 만두 옆에 놓여 있으며, 콜카타의 가판대에서는 담배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 코드는 인력거(릭샤) 운전기사 좌석 뒤에도 붙어 있고,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청구서에도 표시돼 있으며, 아마존 결제 화면에도 등장한다. 10루피(약 144.1원)어치 땅콩을 사는 데도, 10만 루피(약 144만 1000원)짜리 아이폰을 사는 데도 똑같이 스캔할 수 있다.

이 QR코드가 인도 사회 곳곳에 너무나 흔하게 자리 잡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에 이런 결제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이 QR코드는 바로 UPI의 시각적 상징이다.

UPI는 지난 8월 25일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인도에서 돈이 이동하는 방식을 사실상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2016년 이전의 인도는 ‘현금 사회’
UPI가 등장하기 전인 2016년 이전만 해도 인도는 말 그대로 ‘현금의 시대’였다. 거래 건수 기준으로 거의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 이뤄졌다. 금액 기준으로도 약 2/3가 현금 거래였다.

현금이 아닌 결제 가운데서는 수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모두 잔돈이 없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 결과 1루피(약 14.41원)짜리의 삶은 사탕이 일종의 ‘대체 화폐’처럼 사용되는 우스운 풍경까지 나타났다.

UPI가 출범한 뒤 첫 12개월 동안 인도인들이 이를 이용한 거래는 7300만 건, 거래 금액은 2270억 루피(약 3조 2710억 7000만원)였다. 그러나 올해 7월 한 달에만 UPI 거래는 무려 240억 건에 달했다. 거래액은 약 30조 루피(약 432조 3000억원)에 이르렀다.

현재 인도에서 이뤄지는 비현금 거래의 85% 이상이 UPI를 통해 처리된다. 수표 거래 비중은 불과 0.2%까지 떨어졌다. UPI는 그런데도 아직 성장 여지가 남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UPI 이용자는 약 5억5000만 명에 달하지만, 이는 인도 성인 인구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즉, 인도에서는 아직 UPI에 가입하지 않은 상당수 성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UPI 성공의 핵심은 ‘단순함’
UPI가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함이다. 돈을 보내거나 받으려는 이용자는 자신의 은행계좌를 모바일 앱에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 결제는 매우 간단하다. 

상대방의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은행 계좌번호를 상대방에게 알려줄 필요도 없고, 플라스틱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다. 별도의 결제 단말기(POS)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휴대전화 하나면 결제가 끝난다.

UPI의 성공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통신사 지오(Jio)의 등장이다. 지오는 UPI가 출범한 바로 그해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모바일 데이터 요금을 크게 떨어뜨려, 수백만 명의 인도인을 인터넷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UPI 앱의 이용자가 됐다.

같은 해인 2016년 11월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예상치 못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유통 중이던 현금 루피의 86%를 사실상 무효화했다. 500루피(약 7195원)와 1000루피(약 1만 4390 원) 지폐를 폐기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신고되지 않은 현금 자산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정책은 인도의 비공식 경제를 크게 훼손했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둔화시켰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었듯이, 이를 통해 현금 없는 경제로의 전환은 급격하게 진행됐다. UPI 거래 건수는 2016년 10월 10만 건 수준에서 그해 12월에는 200만 건으로 급증했다는 것.

‘수수료 0원’ 정책도 확산의 원동력
또 하나의 중요한 정책이 있었다. 정부가 상업적 UPI 거래에 대한 수수료 부과를 금지한 것.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받으려면, 가맹점은 일정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수수료는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결제 네트워크 사업자, 그리고 △카드를 발급한 은행 등 여러 참여자에게 나눠 돌아간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2020년부터 가맹점이 UPI 결제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수수료를 내지 않았다. 이 역시 UPI 확산을 촉진하는 강력한 요인이 됐다.

10주년을 맞아 ‘수수료 일부 부활’
UPI 출범 10주년을 앞두고 인도 의회는 상업적 UPI 거래에 대한 수수료 부과를 다시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직 구체적인 수수료율은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새 수수료는 상업적 거래에만 적용되고, 일정 금액 이상인 거래에 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액 송금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코코넛 노점상에게 돈을 지불하거나, 릭샤 운전기사에게 요금을 내거나, 개인 간에 돈을 주고받는 거래에는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대형 기업들이 비용을 부담하게 하자는 구상이다. 이번 수수료 부활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인도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데도 이렇다. 수수료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논리를 내놓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첫째, UPI 때문에 현금 발행과 관리 비용이 줄어든 만큼 정부가 이미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UPI가 경제 전체에 가져오는 편익이 운영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 셋째, 결국 수수료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마지막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무료 결제’에 소요비용 엄청나
문제는 UPI를 운영하는 데 실제로 돈이 든다는 것. UPI는 인도국가결제공사(NPCI·National Payments Corporation of India)가 관리한다. NPCI는 공공 및 민간 금융기관들이 공동 소유한 비영리 기관이다.

은행들도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은행들은 결제망을 유지하고, 사기를 방지하고, 거래가 안정적으로 완료되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쓴다. 그 대가로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이 보조금은 은행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무료’가 오히려 혁신 막을 수도
적절한 수익 구조가 없다면, 은행들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투자할 유인은 줄어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은행들이 △기본적인 시스템 유지와 △금융사기 방지 조치조차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결국 소비자도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다만 직접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소비자들은, 충분히 좋은 수준의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형태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즉, ‘무료 결제’는 실제로 무료가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그 비용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도 정부의 성과는 인정해야 
인도 정부는 UPI를 구축하고, 이를 국가 결제 인프라의 핵심으로 성장시켰다. 이 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수수료 정책에서도 두 차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처음에는 수수료를 없애 UPI 확산을 촉진했고, 이제는 수수료를 허용해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가 아무리 크더라도 UPI가 정체되거나 약화된다면, 그 성과 역시 큰 의미를 잃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UPI는 다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UPI 자체도 자신의 운영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