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베센트의 빅픽쳐, 글로벌 채권시장 뒤흔들 것”

WSJ, “4조$ 스테이블코인으로 ‘美 단기채’ 매입시켜 차입비용 절감하려”

  •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달러 페그 스테이블코인은, 만기 93일 이내 미국 단기채로만 뒷받침해야 한다.”

지난해 미 의회를 통과한 ‘지니어스법(Genius Act)’의 이 한 조항이 글로벌 채권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가상화폐 규제 입법들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로 인해 미국 재무부 단기채(Treasury bills)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장기채 매입 확대를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단기채 발행을 늘리는 ‘재무부 트위스트(Treasury twist)’를 시사했으며, 스테이블코인이 이 단기채의 잠재적 대규모 수요의 원천이라고 언급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장기채를 매입하려면 재무부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단기채 발행을 늘릴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4조 달러(약 5520조 8000억 원)로 성장할 경우, 지니어스법에 따라 미국 단기채 발행량의 1/4이 소화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왔다. 이는 미국정부의 차입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WSJ에 따르면, 채권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임무는 트럼프 행정부의 또 다른 추진 과제인 가상화폐 입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장기채의 대규모 매입 규모를 확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만기가 짧은 미국 재무부 단기채 발행량을 늘려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베센트 장관이 과거 재무부 단기채의 잠재적 대규모 신규 수요원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것이라고 WSJ는 짚었다. 이 둘의 연결고리는 지난해 통과된 가상화폐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에 있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발행되며 달러 가치에 고정되려는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자산으로만 그 약속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만기 93일 이내의 국채다.

현재 전 세계 모든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3000억 달러(약 414조 1200억 원) 수준이다. 미국의 머니마켓펀드 규모가 약 8조 달러(약 1경 1043조 2000억 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전체 그림에서 여전히 상당히 작은 규모다. 하지만 베센트 장관은 과거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향후 거의 4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인용하며, “이는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 성장을 가속화할 또 다른 요인은 ‘클래리티법(Clarity Act)’의 통과라고 WSJ는 설명했다. 이 법은 가상화폐 시장의 다른 측면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는, 은행과 가상화폐 기업 간의 분쟁에 발목이 잡혀 있다. 쟁점은 스테이블코인 보유에 대한 보상률(percentage rewards)다. 이는 은행 입장에서는 은행 예금 수익률과 경쟁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에서 가상화폐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접견하며 이 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가상화폐 자산에 대한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이리라는 기대로, 가상화폐 관련 주식은 급등했다. 유에스디씨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서클 인터넷 그룹(Circle Internet Group)과 유에스디씨 보유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코인베이스 글로벌(Coinbase Global)의 주가는 각각 20% 이상 상승했다.

티디 카우언의 브라이언 버긴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클래리티법의 통과는 “더 큰 규제 확실성을 통해 마찰을 줄일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해당 법안 없이도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과 국채 간의 연결은 공상과학이 아니라고 WSJ는 밝혔다. 애스펜 경제전략그룹을 위해 작성되고 브루킹스 연구소 허친스 재정·통화정책센터에서도 발표된 최근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재무부 단기채에 대한 상당한 순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은행 계좌에서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거나, △외국인이 스테이블코인을 매입할 경우 그렇다.

해당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은 보통 자산 1달러(약 1380.4 원)당 단기채를 8센트만 보유한다. 반면, 1달러짜리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단기채를 거의 80센트어치나 뒷받침한다. 

연구 저자들은 또한,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입되는 외국 자금의 대부분은 단기채 매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추산했다. 상당한 수요가 미국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없는 불안정한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의 저축자들로부터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검토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성장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했다. 시티그룹의 시티 연구소가 제시한 ‘강세 시나리오(bull case)’ 중 하나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4조 달러로 성장할 경우를 전망했다. 2030년 기준으로 그들의 단기채 보유량은 발행된 단기채의 약 1/4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미 지난해 은행가와 투자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재무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증가는 단기채 만기 수증권의 새로운 수요원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티디증권의 금리 전략가들은 2025년 10월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발전이 “재무부의 부채 관리 결정에 영향을 미쳐, 발행물의 가중평균 만기를 단축시킬 수 있다”고 작성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초기 단계의 이야기라고 WSJ는 밝혔다. 데이터 제공업체인 데피라마(DefiLlama)의 추적 결과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전체 시가총액은 최근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 지난해 10월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다.

브루킹스 검토 보고서는 또한 국채에 있어 “스테이블코인의 신규 수요가 안정적인지 변동적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최적의 부채 만기 구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 기업의 주가 측면에서도 앞날이 완전히 순탄치만은 않다. 디지털 금융 영역에는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토큰화된 예금(tokenized deposits)이나 △디지털화된 단기채 자체와 같은 것들로부터 많은 경쟁이 있을 것이라고 WSJ는 예상했다. 현재의 주가 수준에서 투자자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기업의 사업 중 일부는 국채 등 보유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익이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리 변동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다. 이보다 더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자금 이동과 관련한 서비스들이다. 사용자를 대신해 쇼핑을 하는 AI 에이전트의 사용까지도 그에 해당한다.

버긴은 “에이전트 상거래(agentic commerce)는 스테이블코인 사용 증가의 잠재적 장기적 촉매제가 될 것”이며, “이보다 더 가까운 시기의 동력은 국경 간 결제나 기업 간 결제와 같은 것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실현되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은 언젠가 정부가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곳에 이르는 길은 한 대통령의 임기보다 훨씬 길다고 WSJ는 진단했다.

한편,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처럼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면 그 준비자산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관련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은행 예금, 국채시장, 외환시장, 통화정책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단기 국채나 안전자산을 준비자산으로 요구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자체가 해당 준비자산 시장의 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또한, 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해외에서도 사용된다면 한국의 금융·결제망과 원화의 국제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