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디지털 지갑으로 모든 종류의 자산을 사고팔고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회장 래리 핑크가 던진 이 선언이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올해 1월 1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예정대로 내년 2월 시행되면, 블록체인 기반 토큰증권(STO·Security Token Offering)의 발행과 유통이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편입된다.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쪼개 토큰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금융권의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7월 하위법규·가이드라인 발표를 예고, 금융권은 STO 발행·유통망 선점을 위한 컨소시엄·플랫폼 구축 속도전에 돌입했다. STO에 대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관련 시장이 2030년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 열쇠는 8개월 뒤 법 시행 전에 제도·인프라·기초자산 전략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느냐에 있다.
금융위는 현재 토큰증권 하위법규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의 세부 내용을 검토 중이다. 민관합동 협의체를 통한 회의에서 발행·인프라·유통의 세 갈래로 논의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이 주식·채권 등 권리 구조와 현금흐름이 표준화된 기존 정형증권의 토큰화를 통해 혁신을 거듭하는 사이, 국내 시장은 여전히 부동산·미술품 등 ‘조각투자’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프라가 주도권 결정”… 금융권, 잇따른 대응 나서
현재 국내 금융권은 STO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인프라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키움증권, 하나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와 금융지주들은 앞다퉈 조각투자 플랫폼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토큰증권 발행·수탁을 위한 전담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코스콤과 한국예탁결제원은 토큰증권 테스트베드 플랫폼을 정식 거래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발행·결제 인프라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느냐가 승부처”라며 “테스트베드의 정식 시스템 전환 속도가 시장의 주도권을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금융자산 토큰화’ 질주… 한국은 ‘조각투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한 단계 앞서 나갔다. 한 실물자산토큰화(RWA) 데이터 분석 플랫폼(RWA.xyz)에 따르면, 전 세계 RWA 시장 규모는 1년 새 173% 성장한 316억 달러(약 47조 7602억 4000만 원)에 달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국채, 머니마켓펀드(MMF)는 물론 애플·테슬라 등 주식을 토큰화해 24시간 거래하는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씨티그룹이 비상장사 지분을 토큰화한 ‘디지털 예탁증서(DDR)’를 출시한 것은 글로벌 금융기관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국내는 제도 설계 초기부터 부동산, 미술품 등 비정형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조각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엽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투자운용사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정합성에 맞는 제도 혁신과 주식·채권 등 기축자산의 토큰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내달 금융위 가이드라인, 정형증권 토큰화 단초 될까
시장과 업계의 시선은 금융위원회가 7월 발표할 ‘토큰증권 하위법규 개정안 및 가이드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후속안에서 조각투자 증권의 기초자산 요건과 발행 구조 정비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는 시장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조각투자 발행 기준 정비에 집중하고 있다”면서도 “주식·채권 등 정형증권의 토큰화와 온체인 결제를 위한 단계별 로드맵도 협의체를 통해 지속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에 정형증권 토큰화를 위한 인프라 전환의 구체적인 윤곽이 담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자산의 토큰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24시간 거래와 실시간 정산,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 확대라는 자본시장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STO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제도 혁신,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수요에 맞는 기초자산 전략이라는 세 박자가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평가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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