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양자컴퓨터의 위협이 ‘이론’에서 ‘현실적 위협’으로 격상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구글의 논문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개인 키 해독에 필요한 자원이 기존 추정치의 1/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엔비디아 등이 인공지능(AI) 모델을 양자컴퓨터 개발에 접목, 이 위협의 실현 시점을 더욱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따라, 빠르면 2030년, 늦어도 2035년까지는 ‘암호학적으로 관련 있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면, 비트코인 개인 키를 9분 만에 해독할 수 있게 된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비트코인의 블록 확인 시간이 10분임을 감안하면, 거래 완료 전에 탈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리플, 서클, 이더리움 재단, 트론 등 가상화폐의 주요 업체들은 양자컴퓨터에 대비해 ‘포스트 양자 암호화(PQC)’ 전환 로드맵을 공표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해 8월 “2030년 이전에 암호 해독 능력을 갖춘 양자컴퓨터가 등장할 확률이 약 20%"라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구글 논문에는 이더리움 재단 연구자가 직접 공동 저술에 참여해, 위협을 정의하는 진영과 방어를 구축하는 진영이 일치하는 이례적인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구조로 인해 보안 업그레이드를 위한 통일된 리더십·합의가 부재하다고 FT는 우려했다.
FT에 따르면, 기술 기업들이 실용적인 양자컴퓨터 개발 완료 시점을 빠르면 2030년으로 대폭 앞당기고 있다. 가상화폐 기업들은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머지않아 글로벌 가상화폐 업계의 핵심 보안 체계를 해킹할 수 있게 될 위협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는 비트코인을 뒷받침하는 핵심 암호 코드를 해독하는 것도 포함된다.
원자적·아원자적(subatomic) 수준에서 물질의 물리 법칙이 다르게 작동하는 방식을 이용하는 양자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가하는 위험은 한때 먼 미래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비트코인은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유포돼 왔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기업들은 ‘포스트 양자(post-quantum)’ 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기술 기업들이 실용적인 양자컴퓨터 개발 완료 시점을 빠르면 2030년으로 대폭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의 글로벌 디지털 자산 수석 애널리스트인 거탬 츄가니는 “도전 과제는 더 이상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10년 남짓 남은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상화폐 산업이 대비하기 위해서는 3~5년의 시간과 “수천억 달러(수 백조원)는 아니더라도 수십억 달러(수 조원)”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FT에 따르면, 구글이 4월에 발표한 백서는 가상화폐 산업의 위험을 자세히 설명했다. 연구원들은 양자컴퓨터가 이전에 제안된 것보다 더 적은 자원으로 암호화를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가상화폐와 디지털 인프라의 특정 취약점을 확인했다.
리플, “해킹위협이 이론에서 현실로” 경고
“위협이, 이론적 가능성에서 신뢰할 수 있는 현실로 이동했다”. 가상화폐 그룹 리플의 블록체인 개발 부문인 리플엑스(X) 엔지니어링 총괄 아요 아키니엘레는 이렇게 밝혔다. 리플은 포스트 양자 암호화(post-quantum cryptography)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갑 보안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향후 2년 내에 인프라를 전환할 계획이다.
이 위험이 가상화폐 업계에 특히 심각한 이유는, 블록체인에서의 자산 탈취가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FT는 설명했다. 반면, 전통 금융기관은 일반적으로 자금 흐름을 추적·차단할 수 있는 다중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대형 은행 등 전통 금융사들이 블록체인 기반 기술에 투자하고 디지털 토큰 활용을 검토하면서, 양자 위협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원리와 가상화폐의 취약성
일반 컴퓨터는 0 또는 1 두 가지 값만 취할 수 있는 이진법 ‘비트(bit)’를 사용한다. 반면, 양자의 비트 즉 ‘큐비트(qubit)’는 그 사이의 모든 가능한 상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포함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기존 암호화의 근간인 대형 소수(素數)의 곱셈을 역산(逆算)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가상화폐는 양자 위협에 취약하다. 디지털 지갑의 구조 때문이다. 각 지갑에는 두 개의 키(key)가 있다. 코인을 수신하는 주소 역할을 하는 ‘공개 키(public key)’와, 사용자가 비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보유 자산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개인 키(private key)’가 그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잠재적으로 개인 키를 해독해 공격자가 자금을 훔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구글의 경고 논문
구글은 4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가상화폐 업계의 위험을 상세히 기술했다. 연구진은 가상화폐와 그 디지털 인프라의 구체적인 취약점을 파악했다. 양자컴퓨터가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자원으로 암호화를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싶다. 보안과 안정성 향상을 위한 권고사항을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제공하고 있다”고 구글 논문의 수석 저자 라이언 배버시는 말했다.
가상화폐 기업들은 구글 연구 발표 이후 즉각 행동에 나섰다. 리플을 비롯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 가상화폐 사업가 저스틴 선의 트론 그룹 등이 비즈니스를 양자 안전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상세 계획을 밝혔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 중 하나를 관장하는 이더리움 재단은 포스트 양자 팀과 로드맵을 출범시켰다. 서클은 양자에 내성(耐性)이 있는 가상화폐 지갑 개발을 시작으로, 블록체인 아크(Arc)를 포스트 양자 세계에 대비시키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작업을 훨씬 어렵게 만드는 방법들이 있다. 연구자들이 양자컴퓨터가 해독하기 매우 어려운 프로토콜을 만들었다”고 유니버설 퀀텀의 최고경영자(CEO)인 세바스티안 베이트는 말했다.
미국 정부의 투자와 비트코인의 딜레마
가상화폐 업계의 이러한 우려는 미국 정부가 양자컴퓨팅 기술을 적극 지원하는 가운데 제기됐다. 미 정부는 양자컴퓨팅 분야 기업들에 총 20억 달러(약 3조 144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장 큰 과제는 고도로 탈중앙화된 채 단일 주체가 운영하지 않는 비트코인에 있다. 비트코인에 보안 암호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조율이 필요하지만, 아직 이런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경고한다.
“비트코인에는 리더가 없다. 수많은 목소리가 있고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지만, 비트코인 보유자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명확한 제안은 없다”고 리플엑스의 아키니엘레는 말했다.
일부 회의론도 제기
한편, 일부에서는 양자 위협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가상화폐 인프라 기업 미스텐 랩스의 수석 암호학자 코스타스 칼키아스는 “이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론적인 컴퓨터”라며 “위험은 수십 년 후의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AI 취약성이 훨씬 더 즉각적이고 위험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키니엘레는 회의론자들이 AI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가 최근 양자컴퓨터 개발 경로를 앞당기기 위한 새 AI 모델을 출시한 점을 강조하며, “AI가 양자 위협을 가속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위협”이라고 FT에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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