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이사회에 ‘디지털 대전환’ 바람

주요 금융사 사외이사, AI·블록체인 등 인력 대거 수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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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이사회에 ‘디지털 대전환’ 바람

▲ 류정혜 우리금융 사외이사 후보 / 자료=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국내 금융권 이사회가 물갈이되고 있다. ‘방패’ 역할을 하던 법조인과 전관, ‘명망가’ 중심의 교수들이 차지했던 금융사 사외이사 자리에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정보통신기술(ICT) 등 디지털 금융 인력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금융의 AI도입이 가속화하고,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이사회는 이제 감시자를 넘어, 디지털 대전환의 방향을 제시·점검하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와 증권사들의 사외이사 인선 키워드는 단연 ‘실무 전문성’이다.

‘이론’ 보다 ‘실무’... AI·블록체인 전문가들 영입
18일 데이터뉴스 취재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AI 현장 출신인 류정혜 후보를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류 후보는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대표 빅테크를 거쳐,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그룹의 전사적 인공지능 전환(AX)을 위해, 현업출신 전문가의 합류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케이비(KB)금융지주 역시, 블록체인과 디지털 화폐 분야의 전문가인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했다. 이 사외이사는 중앙정부 디지털 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 연구를 담당해, 국민은행이 추진 중인 가상자산 수탁사업과 STO 사업에 제언을 할 적임자로 꼽힌다.

KB금융지주는 앞서 2023년부터 ICT 전문가인 최재홍 가천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활용하고 있다. 최 교수는 카카오 창업 초기 사외이사로 몸담으며 벤처 생태계를 경험했고, 최근에는 저서 ‘챗지피티 빅 웨이브’를 통해 AI 시대 금융의 변화를 예견하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는 프랑스 파리6대학 전산학 박사출신으로 삼성SDS 부사장을 역임한 윤심 전 미라콤아이앤씨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재추천했다. 

신한금융지주는 ICT 기업 경영 경험을 가진 양인집 어니컴 대표를 2025년 사외이사로 선임, 디지털 사업 이해도를 높여왔다. 1998년 소프트웨어 기업을 창업한 양 대표는 빅데이터, 머신러닝, AI 솔루션부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ICT 품질 검증까지 두루 경험한 ‘기술자’다. 빅데이터·AI·소프트웨어 분야 경험을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비엔케이(BNK)금융지주는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을 지낸 박수용 서강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낙점했다. AI·소프트웨어 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는 기술 전문가다.

현대차증권은 디지털 금융 전문가인 인호 고려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천, 디지털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핀테크협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디지털 금융에 정통하다. 현대차증권은 STO 시장 확대와 AI 기반 자산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기술 자문을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디지털자산 정책 전문가인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내세웠다. 금융감독원 블록체인자문단 출신으로, 디지털자산 규제 대응과 핀테크 전략 자문을 맡게 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TO와 디지털자산 시장이 열리면서, 기술과 규제를 동시에 이해하는 인물이 이사회에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법률 대응’에서 ‘디지털 리스크 관리’로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디지털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하나금융지주는 판사 출신 사외이사가 물러난 자리에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를 배치했다. 이는 이사회의 무게중심을 ‘사후 법률 대응’에서 전산 장애나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전 소비자 보호’로 옮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엔 금융사고가 터지면 수습할 법조인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AI 알고리즘의 편향성이나 정보보호 이슈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압박도 작용했다.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국내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절반 이상이 현직 교수로 채워진 점을 지적하며, ‘실무 경험 부족’과 ‘정무적 편향성’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최근 금융사 전산 장애, 개인정보 유출, 디지털 금융 리스크 등이 잇따르면서 ICT와 데이터 관리 역량을 이사회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전문가 영입과 함께 ‘이사회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금융은 외부 자문기관을 통한 사외이사 평가 비중을 30%까지 확대해 ‘제 식구 감싸기’식 평가를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디지털금융 전문가들이 주요 금융사 이사회에 잇따라 진입하는 것은, 전통 금융의 문법이 디지털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이들이 얼마나 실질적인 견제와 자문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향후 금융사들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