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인·핀테크 업체들, 시중은행 쇼핑 잇따라 나서”

WSJ, “주류 금융권 진입 지름길…고객·위상·저원가성 자금확보까지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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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인 기업들과 핀테크 업체들이 전통 금융의 핵심인 은행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은행의 설립(Build) 대신, 인수(Buy)를 통해 진입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핀테크·가상자산 정책과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이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코인 관련 가상자산 기업들과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주류 금융 시스템으로의 진입을 꿈꿔왔다. 그 지름길을 일부가 은행 인수에서 찾았다고 WSJ는 설명했다.

이들 기업은 은행의 신규 인가(차터)를 직접 신청해 처음부터 은행을 설립하는 대신, 기존 은행을 인수하고 있다. 기존 금융기관이 보유한 고객, 예금, 그리고 신뢰도(위상)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가와 변호사들이 이렇게 보고 있다고 WSJ는 밝혔다. 이런 거래는 물론,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로펌 폴 헤이스팅스의 글로벌 핀테크 그룹 공동대표인 크리스 대니얼은 “(은행을) 직접 설립할지, 인수할지를 놓고 여러 기업과 논의 중”이라면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및 중소기업 대출업체인 핀테크 기업 에노바 인터내셔널은 최근 3억6900만달러(약 5278억 5450만 원) 규모로 그래스호퍼 뱅코프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거래를 통해 에노바는 ‘전국 단위 은행인가(national bank charter)’와 수십억달러(수 조원) 규모의 저비용 예금을 확보하게 된다.

스티브 커닝햄 에노바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에서 “뉴욕에 기반을 둔 이 디지털 은행 인수로, 은행 인가 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제공받게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 은행 서비스의 대안을 장려해왔다. 그 과정에서 크립토 및 핀테크 기업들은 이미 은행 영역에 상당 부분 진출했다. 여러 가상화폐·핀테크 기업들이 전국 신탁은행(national trust bank) 인가를 신청했다. 지난해 여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등 정부 발행 통화에 연동되는 가상화폐인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적 틀에 서명한 이후부터다.

신탁은행 인가를 받으면, 가상화폐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해당 토큰을 뒷받침하는 준비금을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받는다. 다만 일반적인 상업은행처럼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는 ‘메인스트리트 은행’의 핵심 업무까지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더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가를 원한다. 특정한 인가는 예금 수취와 대출 실행을 허용해준다. 이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FDIC) 가입과 연방준비제도(Fed) 계좌 개설을 가능하게 해 원활한 결제 처리를 돕는다.

이달 초, 에레보르 은행(Erebor Bank)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새로 설립돼 인가를 받은 은행이 됐다. 이 스타트업은 영화 ‘호빗’에 등장하는 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트럼프 초기 지지자로 알려진 기술기업가 팔머 러키가 설립했다. 그러나 인가를 받고 은행을 설립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컨설팅업체 비알지(BRG)의 금융서비스 그룹장 월터 믹스는 “은행, 결제, 디지털 자산이 융합되는 변곡점에 와 있다”며 “전국의 소형 은행 인수에 관심을 가진 핀테크·크립토 기업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 이코노믹클럽 행사에서 리플(Ripple) 브래드 갈링하우스 CEO는 자사가 은행을 인수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그는 “은행은 우리의 고객”이라고 말했다. 리플은 지난해 12월 전국 신탁은행 인가를 조건부 승인받았다.

스테이블코인 업체 브리지는 지난해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에 11억달러(약 1조 5746억 5000만 원)에 인수됐다. 연방 인가 전국 신탁은행으로 조건부 승인을 최근 받았다고 밝혔다.

핀테크 기업 스마트비즈는 지난해 일리노이주 소재 유나이티드 커뮤니티 뱅코프와 자회사 센트러스트 은행을 인수하는 거래에 대해 규제 승인을 받았다. 은행은 ‘스마트비즈 뱅크’로 재출범하며 전국 단위 중소기업 대출 모델로 사업 구조를 바꿨다.

전국 상업은행 인가는 신탁은행 인가보다 더 엄격한 감독과 자본 요건을 수반한다. 특히 연준의 감독을 받는 은행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 규제 부담과 비용이 상당하다. 이 같은 규제 장벽은 많은 스타트업이 은행 인가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WSJ는 강조했다. 에노바의 커닝햄 CEO는 “우리는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전략적 기회가 단점보다 훨씬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디지털자산 인수합병(M&A) 자문사 아키텍트 파트너스의 설립자 에릭 리즐리는 “가상화폐 고객들과의 대화에서 은행 인수는 확실히 거론되는 주제”라면서도 “아직은 구체화된 계획이라기보다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 가깝다”고 WSJ에 말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