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거대은행인 로이즈(Lloyds)은행이, 고객 예금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예금 토큰화(Deposit Tokenisation)’를 통해 은행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려 하고 있다. 이 은행은 스마트 계약을 활용해 주택담보대출·재대출·결제·투자 자동화 등을 실행, △거래 속도 개선, △유동성 증가, △중개 비용 절감 등을 달성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로이즈는 영국에서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해체중이다. 영국 최대 주택담보대출 공급업체인 이 은행은, 스마트 계약을 통해 주택구매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있다. 이 프로세스는 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다양한 중개인과, 계좌이체 단계 때문에 지연이 발생해 왔다. 이 은행의 찰리 넌 최고경영자(CEO)는, 블록체인으로 어떻게 주택 구매를 혁신할 수 있는지를 알리는 저명한 전도사가 됐다.
넌 CEO는 고객 예금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예금 토큰화’가 로이즈의 디지털 고객 2300만명의 계좌 사용 방식을 혁신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그 파괴적 잠재력을 스마트폰의 등장에 비유했다.
지난 12월 FT 글로벌 뱅킹 서밋에서 그는 “처음 집어들었을 때, 스마트폰은 매우 직관적이고 연결돼 있었다”며, “향후 5년 내에 이 예금 토큰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더 개인화되고, 직관적이며, 단순해졌음을 깨닫는 ‘와우 모멘트(Wow moment)’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즈는 지난 12월 토큰화된 예금을 이용해 영국 국채를 매입하는 최초의 공공 블록체인 거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은행 측은 이번 거래가 그동안 프라이빗 원장에 국한됐던 디지털 금융 기술의 확산을 촉진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 잠재력을 보고 있는 것은 로이즈만이 아니다. 바클레이스(Barclays), 홍콩상하이은행(HSBC), 냇웨스트(NatWest) 등의 대출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영국 금융협회(UK Finance)와 함께, 파운드화 예금 토큰화 테스트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를 대규모로 시행하면 은행 내부의 근본적인 시스템(Plumbing)을 재설계할 수 있다.
FT에 따르면, 토큰화된 예금은 기관이나 개인의 예금에 의해 뒷받침되는 블록체인 상의 실제 현금을 의미한다. 이 기술의 핵심 매력은 자동이체와 같은 기존 예금과 달리, 특정 조건이 충족될 때만 특정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전 조건은 코드 라인으로 작성되며 ‘스마트 계약’이라 불린다.
이 코드를 통해 특정 달에 충분한 저축이 이뤄지면 자동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투자하거나, 실제 에너지 소비량만큼만 요금을 지불하거나, 주가가 특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주식을 매수하도록 예약할 수 있다. 금융 인프라 기업인 퀀트(Quant)의 길버트 버디안 CEO는 “토큰화된 예금은, 전자 화폐에서 디지털 프로그래밍 가능 화폐로의 진화”라고 설명했다.
찬성론자들은 소위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이 △은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증대하며, △거래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고 FT는 밝혔다. 특히 로이즈는 스마트 계약이 영국에서 악명 높게 느린 주택 구매 과정을 단축해주길 바라고 있다. 넌 CEO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권리 이전, △문서 공유, △가치 교환 및 결제 프로세스 전체를 스마트 계약에 통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계약으로, 재담보(Remortgaging) 절차도 간소화될 수 있다. 여러 브로커에게 전화하거나 온라인에서 더 나은 조건을 검색하는 대신, 스마트 계약을 통해 특정 금리에 도달했을 때만 자금을 변호사나 새로운 대출 기관에 송금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FT는 설명했다. 보안은 여전히 최우선 과제다. 서로 다른 은행 간의 토큰화된 결제가 원활하게 연동되어야 한다. 영국 금융협회의 자나 맥킨토시는 “영국 금융 시스템에 토큰화된 예금을 도입하는 것은 구현하기 복잡하다”고 언급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이러한 제품에 대한 투자 수요가 불분명하며, 은행 간 호환 시스템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은행감독청(EBA) 역시 블록체인 해킹 위험이 금융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은행들이 토큰화에 뛰어드는 이유는, 테더(Tether)나 서클(Circle)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경쟁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도 강하다. 규제 당국과 은행들은 고객들이 은행 예금을 인출해 이자를 지급하는 가상화폐 회사의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HSBC의 존 오닐은 토큰화를 통해 예금이 “중앙은행 화폐와의 연결성, 안정성,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이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판적이다. 베이즈 비즈니스 스쿨의 프란세스크 로드리게스 투스 교수는 “일부 대형 은행들이 기술의 혁신성을 과장하고 있다”며, “이는 예금 유출을 막기 위한 방어적 움직임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CEO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2027년까지 영국 모든 금융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전반의 토큰화된 예금’이 출시될 것이라며, “중국, 싱가포르, 인도 등 전 세계 어느 시스템도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FT에 강조했다.
권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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