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기업에서 인공지능(AI)이 경영 전략·리스크 관리·기업윤리까지 재편하고 있다. 미국 주요 대기업들의 이사회가 “AI가 기업 변화를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몰고 온다”며 “기술 이해도가 낮으면 기업의 미래를 놓칠 위험이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이사회 거버넌스에서는 관료적 합의보다, ‘토론과 반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응방법은 각사 이사회마다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 통신 대기업 버라이즌은 “빠른 변화에 내부 혁신이 뒤처지면 회사가 위험해진다”고 속도감 있는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제이피모건 에서는 “방향이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변화의 내실을 다지는 중이다. 월마트는 “AI가 직접 이사회 회의에 참여할 날이 곧 온다”고 준비하고 있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미국 대기업들의 이사회를 전례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부는 대응책을 찾느라 분주하다고 WSJ은 전했다. 주요 기업의 이사회 멤버들은 “AI가 그동안 경험한 어떤 변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업 환경을 바꾸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WSJ 리더십 인스티튜트가 최근 주최한 ‘이사회 서밋’ 결과, AI로 인한 변화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는 각 기업의 이사회마다 의견이 갈렸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시스코와 라자드 이사인 댄 슐만은 “지금처럼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바뀐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제이피모건 체이스, 디즈니, 암젠 등 여러 기업의 이사들도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통합할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었다.
이사회는 협업 중심으로 운영돼야 할까, 아니면 서로 도전적 토론을 해야 할까? 변화를 빠르게 추진해야 할까, 아니면 신중히 나아가야 할까? 그리고 AI 도입의 최종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슐만은 “AI 모델은 두 달마다 향상되고 있으며, 인간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은 2~4년 내에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이사회 구성원들은 동료애(collegiality)와 긴밀한 협력이 기술을 효과적으로 채택하는 데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슐만은 그 반대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전례 없는 시점”이라고 표현하며, “기술 변화 속도가 내부 변화 속도를 앞지르면, 회사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내부 혁신이 외부보다 느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다소 무자비(ruthless)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만약 대기업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다른 회사들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슐만은 “100명의 직원으로 수십억 달러(수조원)의 매출을 쉽게 올릴 회사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그는 또 “요즘 성공적인 회사일수록 내부가 더욱 논쟁적(argumentative)”이라며 “관료주의를 줄이고, 이견과 토론을 장려하며, 서로 더욱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카콜라, 언더아머, 디즈니의 이사이자 사모펀드 퍼미라의 고문인 캐럴라인 에버슨은 “AI 시대엔 ‘현상 유지에 대한 불만족’과 ‘긴박감’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사회는 리스크가 커 보이더라도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제이피모건, 애플, 아이비엠의 이사이자 존슨앤존슨 전 CEO인 알렉스 고르스키는 “너무 빠른 변화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며 “이사회는 때로는 회사를 속도 조절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는 더 빨라져야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빠르게 움직일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며 “이것은 긴 아크모양을 그리는 여정이다. 당장의 위기(crisis du jour)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AI 전략의 소유권 문제도 불거졌다. 고르스키는 “회사 내에서 누가 생성형 AI 전략을 책임질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며 “모두가 예산과 결정권을 가질 순 없다. 이건 ‘버거킹’이 아니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할 순 없다”고 꼬집었다.
듀폰 전 CEO이자 골드만삭스·암젠 이사인 엘런 컬먼은 “조직 내부의 불안과 자신감 결여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적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그녀는 “AI는 (상품을)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하게 만들 뿐 아니라, 최상위 매출 성장(top-line growth)과 비용 효율화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조직이 이해하도록 도와야한다”며 “월스트리트가 특정기업의 AI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려면, 매출 성장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사들은 AI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심지어, “AI가 이사회 회의 자체에 들어와 미래의 대리인이 돼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월마트와 노던트러스트 이사이자 피더블유씨 전 글로벌 회장인 밥 모리츠는 말했다. 그는 AI가 가져올 역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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