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매입은 투자가 아니다. 보험가입이다”

WSJ, “인플레, 정치 불안, 부채 급증,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때마다 부각…포트폴리오의 0.5~9%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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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정부 부채 급증, 정치 불안정….’ 글로벌 경제의 이같은 잠재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금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금 매입은 투자 보다는, 보험 가입에 가깝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한국 투자자들도, 단기 수익보다 위기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안배’로 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WSJ에 따르면, 1970년대 두 자릿수 물가 상승기에 금값은 폭등했다. 최근에도 글로벌 중앙은행의 대규모 금 매입과 달러 기축통화 지위 약화 우려 속에, 금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투자운용사인 디이 쇼(D.E. Shaw)는 “합리적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의 0.5~9%를 금에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새로 채굴되는 금은 매년 금의 전체 공급량을 2% 미만으로 증가시킨다고 제이피모건 체이스는 밝혔다. 금의 나머지 가치 증가는, 오르는 가격에서 비롯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국채 수익률을 따라잡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의 일반적인 조합보다는 못할 것이다. 금의 목적은 주식, 채권, 또는 달러를 강타하는 ‘무언가’가 발생했을 때 그 충격을 완화하는 데 있다. 핵심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

특히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흔들리는 국면에서 금은 유일한 안전판으로 꼽힌다고 WSJ는 강조했다. 미국 정부 부채는 10년 내 국내 총생산(GDP) 대비 1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연준 독립성 약화 논란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물가연동국채(TIPS)조차 정치적 개입 위험이 불거지면서,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마지막 자산이 금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WSJ에 따르면, 2020년 들어 이전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흐름이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 저가 상품의 홍수를 가져온 세계화는 퇴조하고, 관세와 보호무역, 리쇼어링이 대세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합법·불법 이민이 고령화 노동력을 보완해줬다.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이민 유입은 차단됐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연준은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값)를 올려, 수요와 가격 결정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 D.E. Shaw가 지적했듯, 높은 실질금리는 금에 불리하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려면, 연준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에게 “연준은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나 같은 똑똑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준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란을 연준 이사로 임명했다. 미란은 연준 재직 중에도 백악관 직함을 유지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또한 모기지 사기 혐의로 다른 연준 이사를 해임하려고 시도 중이다. 내년 5월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교체할 수 있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금리를 더 빨리 낮추는 것.

투자자들은 이것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 종식은, 투자자들이 가격 책정에 어려움을 겪는 세대에 한 번 있을 법한 위험이다. 금이 이를 헤지하는 데 적합하다.

주식과 채권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금은 일반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금은 채권에 대한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헤지 효과는 금리 상승 원인에 크게 좌우된다. 

저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경제 전망 개선으로, △금리가 오르고 △채권 가격이 하락하며 △주식이 상승한다. 이 경우, 주식과 채권 수익률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며 서로를 헤지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때는, 채권과 주식 가격이 함께 오르내린다. △이들의 수익률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며 △서로를 더 이상 헤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금은 양쪽 모두를 헤지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자산이 된다. 현재 이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최적화된 자산 배분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는 물가연동국채(TIPS)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BLS)이 불리한 고용 데이터를 발표한 후, BLS 국장을 해임하고 당파적 지지자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BLS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변경해 보고된 인플레이션을 낮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CPI에 연동되는 TIPS가 제공하는 보호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금은 그렇지 않다.

부채와 달러
연방 예산 위원회(CRFB)에 따르면, 현재 GDP 대비 약 100%인 공개 보유 연방 부채는 10년 안에 120%로 증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어느 정당도, 이 증가를 막을 신뢰할 만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높은 부채는 두 가지 위험을 초래하며, 둘 다 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더 희박한 위험은 정부의 채무 불이행이다. 다른 하나는 ‘재정 우위’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보다 연방 부채 부담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금리 인하를 요구할 때, 부채 비용을 자주 근거로 제시한다.

금은 또한, 중앙은행, 국부펀드, 그리고 권력층이 부를 착취하는 체제에 갇힌 개인들에게 ,달러와 경쟁하는 준비자산이다. 그러나 달러는 준비자산으로서의 매력을 일부 잃었다. 2022년 초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를 동결한 이후부터다.

이 이후 금값이 두 배로 오른 데 대부분 중앙은행의 매수가 기여했다고 골드만삭스는 추정한다. 올해 트럼프의 무역 전쟁은 투자자들의 달러에 대한 신뢰를 더욱 악화시켜, 금 가격 상승에 분명히 기여했다.

△고인플레이션, △재정 우위, △준비통화 지위 상실 등이 달러를 위협한다면, 외화를 매입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도 높은 부채와 정치적 불안정을 안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로 회의론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부상하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후에도 유로가 존재할지 확신할 수 없다. 금은 법정통화에 대한 집단적 신뢰 상실에 대비한 헤지 수단이다.

보험으로서의 금
△인플레이션, △재정 우위, △달러 약세, △전쟁 및 정치적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금값을 이미 크게 끌어올렸다. 이러한 위험이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면 지금 왜 사야 하는가? 이 주장은 시장 정점에서 흔히 듣는 말과 유사하다.

금의 가치는 가격 전망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달려 있다. D.E. Shaw에 따르면, 수익과 위험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의 0.5%에서 9%까지 금에 할당할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거나, 주식 시장 붕괴나 인플레이션 급등 같은 금융 위기가 우려될 때는 이 비중이 높아진다. 이 배분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위험 감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금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사용하지 않은 보험 증권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집이 불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WSJ는 주장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