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주년 맞은 이더리움, 다기능 인프라로 발전”

FT, “비트코인은 ‘디지털 金’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자산 담보’로 각각 글로벌 금융에 통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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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Ethereum)이 최근 탄생 10주년을 맞으면서,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5년 스위스의 한 주택에서 시작된 이더리움은 현재 블랙록 등 월스트리트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채택, ‘금융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분석했다. 

이더리움은 이더(Ether) 토큰을 사용하는 분산형 컴퓨팅 플랫폼으로, 현재 가상화폐 생태계의 핵심 중 하나. 그동안 해킹에 이어 가격의 폭등·폭락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FT는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기술이 유용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FT에 따르면, 꼭 10년 전에 6명의 이단아들이 이더리움을 탄생시켰다. 스위스의 한 집에 모여서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실패가 유력해 보였다. 창립자들 간의 심각한 내부 갈등으로 조직은 붕괴했다. 이더리움은 대규모 해킹 사건을 겪었고, 각종 스캔들이 잇따랐다. 이더의 개당 가격은 0에서 5000달러(약 693만 6000 원)까지 치솟았다가 폭락하는 등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일이 최근 일어났다. 미국 백악관이 지난달 말 “가상화폐의 황금시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로 그 시점에, 나스닥이 이더리움의 10주년을 기념했던 것. 공동 창립자였던 조 루빈(Joe Lubin)은 “이더리움은 안티-취약성(anti-fragile)의 정의 그 자체”라며,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신뢰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라고 강조했다.

회의론자들은 여전히 경악하겠지만, 가상화폐 지지자들은 환호했다고 FT는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현재 금융 분야에서 가상화폐는 가장 분열적인 이슈 중 하나. 하지만 이더리움 10주년을 계기로, 보다 현실적이고 미묘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지난 10년은 가상화폐에 대해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할 최소 다섯 가지 중요한 교훈을 보여준다.

첫째, 디지털 자산은 모두 같지는 않다. 가장 명백한 점부터 보자. 디지털 자산은 균질하지 않다. 비판자들은 모두 싫어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하다. 비트코인은 단일 기능만을 가진 ‘디지털 골드’에 비유된다. 이더리움은 다층적인 인프라. 트럼프코인($TRUMP)같은 밈코인은 순전히 과장된 유행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같은 실물 자산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둘째, 흑백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10년 전, 가상화폐 전도사들은 탈중앙화 금융(DeFi)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디지털 자산은 기존 결제 수단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느리고, 비싸며, 에너지 소모가 커서 가격도 너무 변동성이 커서, 신뢰할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이 되기 어렵다. 사기와 범죄는 빈번하다.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 사태나 테더(Tether)의 규제 문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몰락을 예언한 사람들 역시 틀렸다. 최근 가상화폐 가격은 다시 급등했다.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각각 4550억 달러(약 630조 8575억 원), 2조 3000억 달러(약 3188조 95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유통 중인 2700억 달러(약 374조 4090억 원)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은 지난 1년간 비자카드 네트워크와 맞먹는 거래량을 기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탐욕 또는 투기가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본질적으로 블록체인이라는 흥미로운 혁신 위에 세워져 있다. 이 기술은 특히 국경 간 결제에 유용할 수 있다. 이더리움 같은 플랫폼은 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이며, 규제 당국과 주요 기업들도 과거의 문제를 개선하고 있다.

셋째, 기존 금융권이 뛰어들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다. 초기 가상화폐 신봉자들은 기존 금융 체제를 대체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전통 금융이 가상화폐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블랙록 고위 임원이 이더리움 투자 그룹에 합류했다. 피델리티와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는 가상화폐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제이피모건 같은 은행은 자체 블록체인을 운영하고, 스테이블코인도 출시 중이다.

넷째, 가상화폐의 지정학적 위상 변화가 있다. 지난 10년간 가상화폐 혁신의 중심지는 홍콩 등처럼, 미국의 밖이었다. 그러나 이번 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폴 앳킨스 위원장은 이 산업을 미국 내로 끌어오고 싶다고 밝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트럼프 일가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 현실. 2024년 대선에서 가상화폐 업계는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로 활약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당선을 결정지었다고 주장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글로벌 달러 사용을 촉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 시대의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가상화폐의 파급 효과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디지털 자산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혁신이 기존 금융·지정학 질서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위프트(SWIFT) 같은 국제 결제망이 꼭 필요할까? 달러 패권에 반드시 의존해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가상화폐다.

물론 이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고 해서 가상화폐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FT는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충돌은 부끄러운 일이며, 소비자 피해 가능성도 크다는 것. 가상화폐와 전통 금융의 연결성 증가는 금융 안정성에도 위협이 된다. 국채로 스테이블코인을 뒷받침하는 방식도 우려를 낳는다. 범죄와 사기도 여전하다.

이런 위험을 인식하고 더 나은 규제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이 지정학적·금융적 다양성 확보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더리움의 생일은, 가상화폐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모두에게 경각심을 줄 계기가 돼야 한다. 

금융에서도, 그리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세상은 흑백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더리움이 20주년을 맞더라도, 이 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FT는 주장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