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스테이블코인에 각국은 ‘금융주권’과 ‘기술혁신’ 딜레마”

FT, “한국은행 등은 디지털 달러화 여파로 CBDC 중단, 글로벌 금융 안정성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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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페그 스테이블코인이 급성장을 거듭,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최대 3조7000억 달러(약 5061조 97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을 제외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융주권 방어’와 ‘기술혁신 수용’사이에서 갈등을 벌이는 등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 각국은 금융 안정성과 통화 주권을 우려하며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국과 영국 등의 중앙은행은 관련 규제 완화에 이어 자국형 스테이블코인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디지털 유로’로 달러패권의 탈피를 시도중이다. 

FT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융 안정성’ 리스크와 그리고 디지털 화폐의 공공수요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현재 금융 시스템의 주류로 급부상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수용할지, 아니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나 토큰예금 등 대체 기술을 개발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격인 국제결제은행(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은 각국 통화에 대한 신뢰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BIS는 지난달 “스테이블코인의 통제되지 않은 성장은 ‘통화 주권’을 위협하고, 잠재적으로 ‘금융 안정성’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테이블코인이 범죄의 도관으로 악용될 가능성 또한 정책 결정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민간기업 발행의 달러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현재 연방준비제도(Fed)의 CBDC 발행을 금지하는 한편,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틀을 마련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부분 달러 자산을 기반으로 한 이들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의 확장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이에 대응해 자체 CBDC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 화폐를 디지털 형태로 안전하게 제공하고, 달러화 확산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제한적인 성과에 그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의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박사는 “우리는 지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지배하는 기묘한 세계에 살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전 세계가 무분별한 달러화로 치닫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이래서는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각국은 스테이블코인의 진행을 와화할 것인가, 아니면 국내 버전을 통해 혁신으로 수용할 것인가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은 약 2500억 달러(약 342조 7250억 원)에 달하며, 이 중 대부분이 달러와 연동돼 있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거래 전 현금을 대기시켜 두거나, 빠르고 저렴한 송금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대거 매입하고 있다. 거래는 몇 분 내에 처리되며, 수수료는 은행보다 훨씬 저렴하다.

분석가들은 이 시장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씨티그룹 산하 연구소는 스테이블코인 공급이 2030년까지 1조6000억 달러(약 2193조 4400억 원), 미국의 가상화폐 친화적인 입법으로 고양된다면 최대 3조7000억달러(약 5072조 33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부문의 급속한 성장은 이를 따르지 않은 국가들에게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스테이블코인 부문의 성장과, 규제형성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CBDC 실험을 중단했다. 한국내 8개 상업은행은 원화 기반 공동 스테이블코인을 개발 중이다. 영란은행(BoE·Bank of England)도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한 기존의 보수적 입장을 완화할 뜻을 내비쳤다. BoE의 핀테크 부문장을 지낸 바룬 폴은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주류화하려는 움직임에, 영국 당국자들은 자국의 경쟁력 상실을 우려해 태도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3년 첫 규제 검토 당시만 해도 기술은 금융 시스템의 변두리에 있었다”며 “지금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규칙을 설정할 능력을 잃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앤드류 베일리 BoE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대형 은행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금융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업은행 자금의 토큰화(토큰 형태의 예금)가 CBDC보다 더 합리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유로존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European Central Bank)이 디지털 유로 발행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미국 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유로를 달러의 대체 CBDC로 자리잡게 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ECB는 2021년부터 소매용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애틀랜틱카운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69개의 CBDC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지만 실제 상용화된 것은 3개에 불과하고, 2개는 폐기됐다. 그중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나이지리아다. 이 나라는 2021년 ‘이-나이라(e-Naira)’를 출시했지만, 국민은 이를 외면하고 민간 발행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했다. 정부는 결국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유엔 산하 디지털 자산 기관(UNDCIF)의 니틴 다타는 “나이지리아는 공개된 실험장이었다”며 “공공 화폐에 대한 불신이 디지털화폐에도 그대로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며, 시장을 막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영국 결제시스템규제위원회의 루스 완도퍼 위원장은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쓰일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국경 간 자금 이체에서는, 외환 수수료 등으로 인해 여전히 불편하다는 것. 그녀는 또 “일부 국가들은 금융 교육, 결제 인프라, 정보기술 하드웨어 등이 부족하다”며 “결국 현금을 입출금하는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의) 웨스턴유니온보다 비쌀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가상화폐 기반 거래가 많아질수록 정부 세수가 줄어든다”며 “디지털 파운드와 디지털 유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쉬 립스키는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공공 부문의 디지털화폐가 전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FT에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