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발전이 기업의 ‘프런트’-‘백’ 오피스 SW를 하나로 통합중”

이코노미스트, “SAP의 ERP와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CRM이 이제 주도권 경쟁으로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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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열풍이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고객 대면업무를 담당하는 프런트 오피스의 고객관계관리(CRM·Customer Realtionship Managerment)와, 재무·공급망 등 내부관리업무를 담당해온 백 오피스의 전사적 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가 각각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시스템통합을 시도, 둘 사이의 경계를 점차 허물고 있다. 

이에따라 CRM의 대표 기업 세일즈포스와, ERP의 강자 에스에이피(SAP)가 서로의 영역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 경쟁에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이 가세해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최근 보도했다. 세일즈포스와 에스에이피 등 두 회사는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상대 영역을 공략하고, ▲아마존·알리바바 등 클라우드 사업자와 협력해 인프라 비용을 절감하며, ▲AI 분석 툴을 결합해 자사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Economist에 따르면, 2024년 6월부터 12월 초 사이, 26년 역사를 지닌 글로벌 CRM 기업인 세일즈포스는 1200억 달러(약 164조 3760억 원) 이상의 주주 가치를 창출했다. 시가총액은 사상 최고치인 3520억 달러(약 482조 2400억 원)에 도달했다. 

1970년대 ERP를 사실상 처음 만든 회사인 독일의 기술 대기업 에스에이피는 지난 12개월간 세일즈포스보다도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 현재 에스에이피는 유럽에서 가장 가치 높은 기업으로, 시가총액은 3800억 달러(약 520조 7900억 원)에 달한다. 두 기업 모두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SW 기업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일즈포스와 에스에이피는 각각 자신들이 고객을 AI 시대로 이끌 주체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고 Economist는 보고있다. 문제는 많은 고객들이 두 회사의 제품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것. 포춘 500대 기업의 90%는 세일즈포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에스에이피도 마찬가지.

이전까지는 두 회사가 각자의 전문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기업들은 프런트 오피스에는 세일즈포스의 CRM을, 백 오피스에는 에스에이피의 ERP를 사용해왔다. 아마존과 월마트, 코카콜라와 펩시, 비엠더블유와 도요타 등 유명 기업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에이피와 세일즈포스는 기존 제품에 AI를 대대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객들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준자율적 AI 에이전트를 통해 실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프런트 오피스와 백 오피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에스에이피의 데이터·분석 총괄인 이르판 칸은 이를 “하나의 사용자 경험”이라고 요약했다.

이러한 ‘에이전트 기반’ AI 경험에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장악하는 것은 큰 수익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양사의 정면 대결을 불러온다. 두 기업의 AI 전략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

전략의 첫 번째 단계는 ‘제품군 확장’이다. 에스에이피는 캘리더스클라우드(CallidusCloud) 같은 CRM 업체와 이멀시스(Emarsys) 같은 마케팅 플랫폼을 인수, 프런트 오피스 역량을 강화했다. 세일즈포스는 써티니어(Certinia)와의 16년 파트너십을 통해 재무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며 그 기능을 보완하고 있다. 클릭소프트웨어(ClickSoftware)를 인수해 서비스 인력 관리를 돕고, 6월 2일에는 인사관리 스타트업인 문허브(MoonHub) 팀을 영입했다. 

이런 전략은 고객들이 기능별로 공급업체를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에 환영받고 있다. 동시에, 고객 데이터를 자사 시스템에 더 많이 저장하게 되므로, AI 성능 향상에도 유리하다고 Economist는 분석했다.

전략의 두 번째 단계는 ‘하이퍼 스케일러(AI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는 기업)에 올라타기’다. 양사는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중국 클라우드 대기업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클라우드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세일즈포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오랜 불화 때문에 애저(Azure)는 제외한다. 오라클은은 반대로 인프라에 직접 투자, 2020년 분기당 4억 달러(약 5483억 2000만 원)였던 자본 지출이 최근 60억 달러(약 8조 2248억 원)에 달한다. 반면 에스에이피와 세일즈포스의 분기 지출은 합쳐서 3억~4억 달러(약 4112억 4000만 원~ 5483억 2000만 원)수준이다.

전략의 세 번째 단계는 ‘AI 계층 개발’이다. 지난 2월 에스에이피는 600억 달러(약 82조 2300억 원)의 기업 데이터브릭스(Databricks)와 협력해 에스에이피 시스템 외부에 있는 정보까지 분석하는 ‘쥴(Joule) AI 에이전트’를 전사적으로 배포할 수 있도록 했다. 

5월 27일, 세일즈포스는 기업 데이터를 통합·분석하는 툴을 만드는 인포매티커(Informatica)를 80억 달러(약 10조 9664억 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세일즈포스의 AI 에이전트인 ‘에이전트포스(Agentforce)’를 프런트 오피스를 넘어서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Economist에 따르면, 현재 투자자들은 에스에이피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에스에이피 시스템은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고, 데이터도 많다. 이 데이터는 에스에이피 외부 시스템에서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객들은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게 된다. 에스에이피 주가는 지난 6개월 동안 12% 상승했다.

반면, 세일즈포스는 ‘부풀어 오른 프랑스 디저트처럼 주저앉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점 이후 주가는 30% 가까이 하락했다. 2023년 매출은 에스에이피를 앞질렀지만, 성장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반면, 에스에이피는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에이전트포스’가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애널리스트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2021년 280억 달러(약 38조 3908억 원)에 슬랙(Slack)을 인수했던 것처럼 다시 무분별한 인수합병으로 돌아갈지도 우려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언젠가 에스에이피에도 실망할 가능성은 있다. 리서치 회사인 가트너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에 워크데이(Workday) 같은 경쟁사들이 에스에이피의 ERP 시장 점유율을 21%에서 14%로 떨어뜨렸다. 프런트 오피스에서도 노력했지만, CRM 판매는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세일즈포스는 20%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며 시장 확장과 함께 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클라우드, 최첨단 AI, 광범위한 기업 고객층을 무기로 ERP와 CRM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기업용 AI 시장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Economist는 진단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