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무역과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공세적 무역 정책, 그리고 중국 대응 중심의 안보 전략 변화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와관련, 한국과 미국 사이에 ‘조용한’ 위기가 싹트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오랜 동맹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북한의 핵 위협 등 민감한 현안에서 입장 차이를 보여 균열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다음 주 예정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할 경우, 미국과의 갈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후보는 대만 분쟁과의 거리 두기를 주장하며 중국과의 관계 완화를 피력해왔다. 대선 결과, 그리고 새 정부의 대미·대중 전략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한국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국을 배제한, 미국과 북한의 직접 협상 성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시사에 따른 안보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와관련, 빅터 차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동맹은 현재 조용한 위기 상태”라며 “이 위기가 곧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국방부 자문기관인 국방대학교의 클린트 워크 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방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 능력은 트럼프 1기 때보다 훨씬 커졌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한 채 일부 군축 협상에 나서는 경우, 한국은 외교·안보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FT는 전망했다.
이번 달, 한국과 미국은 합동 해군 훈련을 실시했다. 한국 해군 류윤상 사령관은 "한미 연합 함대의 압도적인 힘으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식적인 결의 표현 뒤에, 한미 관계의 잠재적 위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동맹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무역, 지역 안보, 북한의 핵 위협 등 민감한 문제에서 점차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수입품에 25%의 '상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 정부는 충격에 빠졌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 상품에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양국 간 특별한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인 무역 정책은 한국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이 북한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한국으로 하여금 중국과 더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압박할 것을 서울의 정책 입안자들은 우려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칭찬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한편, 한국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며 동맹 관계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1차 임기 당시 한미 FTA 탈퇴를 위협했고,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갈등을 일으켰다.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기록적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의 공격적인 무역 정책에 더욱 불을 지폈다.
한국의 대응 능력은 국내 정치 불안으로 크게 약화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실패 이후, 한국은 장기적인 정치 위기에 빠졌다. 윤 전 대통령은 4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됐다. 한덕수 권한대행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연이어 사임하면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이끄는 임시 정부가 출범했다.
다음 주 예정된 대선에서 좌파 야당 지도자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우세하다. 그는 과거 미국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 후보나 보수진영의 김문수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최근 몇 달간 중단되었던 한미 간 민감한 논의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의 초점을 북한에서 대만 문제로 점차 옮기고 있다. 클린트 워크 연구원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동맹의 목적을 북한 위협에 둬왔지만, 미국은 이제 대만 침공 위험을 더 중시한다”고 말했다.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고위 관리는 “한국은 북한에 대한 방어를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대만 문제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한국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FT는 전망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할 경우, 대만 분쟁에 대한 한국의 중립적 입장이 미국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클린트 워크 연구원은 “한국은 두 가지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에서 한국을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외교적 접촉을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한국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2019년 한미 북한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핵 능력을 크게 강화했다. 카네기 재단의 안킷 판다 연구원은 “북한은 2017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은 비핵화를 요구하는 대신, 현실적인 군비 통제 협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FT는 주장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단독 협상을 추진해 장거리 미사일 개발만 중단시키고 단거리 미사일과 핵 보유는 용인하는 협상을 체결한다면, 한국은 더 큰 위협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은 무역, 안보, 북한 문제 등에서 복잡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안보적 의존도를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빅터 차 석좌는 “한국 내에서 자체 핵 무장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아시아 전역의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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