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치자금 1859억 원 쓴 美 크립토업계, 숙원입법에 박차

NYT, “코인베이스·리플·호로비츠 등이 슈퍼팩으로 의원 50여명 선거 지원한 결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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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 상·하원 선거에서 가상화폐 업계는 1억3000만 달러(약 1859억 원)을 썼다. 이 결과, 가상화폐 업계는 스테이블 코인 등의 입법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는 가상화폐 업계의 숙원입법으로,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가결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가상화폐 업계가 추진하는 법안들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 사업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정치적 논란을 낳고 있다”고 최근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가 가상화폐 준비금 창설을 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최근 자신의 가족이 관여한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루벤 갈레고(Ruben Gallego)는 지난해 치열했던 선거에서, 자신의 과거 군 경력을 부각시킨 홍보광고 등에 코인베이스 등 3대 가상화폐 기업의 슈퍼팩(Super PAC·정치행동위원회)으로부터 1000만달러(약 143억 4300만 원)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 보유 요건 등을 명문화한 지니어스 법안의 핵심 추진 의원이다. 이 법안에 대해 미국 소비자 단체들은 “업계의 소원 목록에 불과하다”며 “가상화폐 업계의 요구를 과도하게 반영해 소비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해외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조항 등이 포함돼, 자금 흐름의 범죄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갈레고 상원의원을 비롯해 슈퍼팩의 지원을 받은 수십 명의 의원들이 가상화폐 업계의 주요 법안을 추진하며, 사기와 변동성으로 악명 높은 이 업계에 승리를 안겨주고 있다고 NYT는 꼬집었다. 가상화폐 업계는 지난해 선거에서 코인베이스, 리플, 앤드리슨 호로비츠 등 주요 기업들의 자금으로 조성된 슈퍼팩(Super PAC·정치행동위원회)을 통해 총 1억3000만 달러(약 1859억 원)를 투입, 58곳의 경선 중 53곳에서 '친 크립토' 후보들을 승리하게 했다.

NYT에 따르면, 오하이오주에서는 공화당의 크립토 기업가인 버니 모레노(Bernie Moreno)를 지지하는 데 4000만 달러(573억 7200만 원)를 지출했다. 모레노는 민주당 은행위원회 위원장이자 가상화폐 비판가로 알려진 셰로드 브라운(Sherrod Brown) 상원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미시간주에서는 민주당 소속 엘리사 슬로트킨(Elissa Slotkin)이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돕기 위해 1000만 달러(143억 4100만 원)를 지출했다.

하원에서도 지니어스 법안과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며, 가상화폐 업계의 로비 전략이 먹히고 있다. 이 법안은 오는 몇 주 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상·하원은 크립토 기업이 미국 국세청(IRS)에 특정 세금 정보를 보고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규정을 폐지하는 데에도 투표했다.

이들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는 최근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패권을 확장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입법을 촉구했다. 그의 가족이 설립을 지원한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최근 ‘유에스디원(USD1)’이라는 스테이블코인의 출시를 예고했다.

이에대해 민주당의 맥신 워터스(Maxine Waters) 하원 의원은 “대통령이 직권을 이용해 자신의 사업을 늘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NYT는 “의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는 업계는 흔하지만, 가상화폐 업계의 정치적 움직임은 그 규모와 결과의 속도에서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법안 추진은 미국 규제 당국이 수년간의 단속 캠페인을 후퇴하는 시점과 맞물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코인베이스와 크라켄 등 주요 가상화폐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철회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