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면, 주식시장은 과연 보상할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트럼프에 호응한 15개 기업 주가, 되레 12%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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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머크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설비투자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백악관은 이를 두고 “미국 산업의 리쇼어링(국내 복귀)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투자 발표 이후, 이들 기업은 주가가 하락하거나 시장보다 부진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일부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등을 비롯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로 해석된다”면서 “이같은 움직임에 투자자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최근 게재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글로벌 기업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해 이들 기업의 주주들은 회의적인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피아트, 지프,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보유한 스텔란티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암 치료제를 만드는 머크,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은 루비 초콜릿 맛으로 유명한 스위스 초콜릿 제조업체 배리 칼리보 등 백악관 보도자료에 언급된 상장기업 20곳을 분석했다. 이들 기업은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 미국 내의 자본 지출(Capex)을 발표했다.

분석 결과, 이들 기업 중 단 11곳만이 발표 다음 날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 기업중 15곳은 작년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증시보다 부진한 성과를 냈다. 이들 기업 주식의 단순 평균 수익률은 선거일 이후 달러 기준으로 약 12%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이 7% 하락한 것보다 더 큰 폭이다.

백악관은 “미국 산업의 리쇼어링(국내 복귀)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지출이 미국에는 좋을 수 있지만, 기업들에게도 좋은 일일까?”라고 반문했다.

트럼프가 작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1월에는 스텔란티스가 디트로이트에서 새로운 닷지 듀랑고를 생산하고 일리노이의 조립 공장을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2개월 후, 머크는 노스캐롤라이나에 백신 공장을 새로 열겠다고 발표했다. 4월 10일, 배리 칼리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만든 ‘혼란스러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공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가 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자본 지출이 주가를 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들이 왜 그런 지출을 하겠는가? 경영진은 주주의 생각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주주들은 자본 배분에 있어 기업의 판단을 신뢰해야 한다. 이게 바로 그들이 기업에 자본을 맡기는 이유다.

하지만 비관적인 이론들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기관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장기 이익을 위한 지출에 대해서는 단기 손실로 인해 이를 벌할 수 있다. 반면, 경영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국을 구축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이론은 ‘효율적 시장 가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주가는 이미 예상된 자본 지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발표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는 자본 지출 발표가 약하나마 긍정적인 주가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본다. 백악관에서 언급한 기업들은 몇 가지 추가적인 장점도 있다. 미국으로 생산을 이전하면 트럼프의 관세를 피할 수 있으며, 그의 호의를 얻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최고경영자(CEO)들은 트럼프와 나란히 서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결과, 백악관이 발표한 이들 기업 대부분은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배리 칼리보는 불안정한 카카오 가격의 영향을 받았다. 머크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에 대해 중국 시장에서 수요가 부진했다. 스텔란티스는 논란 많던 CEO가 12월에 물러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기업의 (미국 내 투자) 결정은 열정보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면서 “트럼프 임기의 초반부터 미국 내 확장을 결정한 것은 이들이 그의 관세 정책에 특별히 취약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게재했다. 적어도 스텔란티스, 머크, 배리 칼리보의 경우,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선거일 이후 주가가 20% 이상 하락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