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치우천왕(일명 도깨비, 붉은악마, 전쟁의 신)에서 문무대왕의 삼한일통까지 3500년에 아우르는 상고사의 집대성, 김이오의 대하역사소설 ‘고국’ 9권 시리즈 중 4~6권이 ‘좋은 땅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1권~3권에 이어 불과 수개월만에 4~6권이 잇따라 출간된 것이다. 1~3권이 고대 우리민족의 발원과 한중역사를 정리한 것이라면 이번 4권(제국의 건설)에서는 발해만 일대의 고구려가 추모, 유리, 대무에 이르러 건국의 기틀을 다지는 ‘삼대경’의 웅장한 역사가 실감나게 펼쳐진다.
이번 4권부터는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의 그림이 다가온다. 중원은 왕망의 ‘신(新)’을 거쳐 AD 23년 유수의 ‘후한’이 일어난다. 동부여가 ‘여신전쟁’을 틈타 고구려를 공략하지만 ‘학반령전투’에서 참패하고, ‘십제’의 온조는 ‘중(中)마한’을 밀어낸다. 광무제가 ‘울암대전’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3차례의 고구려 침공 끝에 현도, 낙랑 2군을 회복한다. 그 와중에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와 호동태자의 사랑 이야기는 햄릿보다 슬프면서도 웅장하게 펼쳐진다. 양대 강국 사이에 서나벌과 백제 등이 초토화된 끝에 45년을 전후로 한(韓)민족의 1차 한반도 이주가 시작된다. 이에따라 수로의 ‘가야’, 작태자 탈해의 ‘사로’(계림)가 건국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감춘 수수께끼가 선명하게 설명, 궁금증이 말뜸이 해소된다. 대륙 세력의 반도 이주사, 그 놀라운 역사가 새롭게 밝혀진다.
5권(한반도 정착)에서는 요동에서 이주해 온 세력들이 반도에 정착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대무신제의 요서원정과 신명선제의 극동정복이 이어지고, 한강 중류로 들어온 서나벌과 백제는 13년 ‘백서전쟁’을 치른다. 해씨에서 박(朴)씨 왕통으로 바뀐 서나벌은 94년경 파사왕이 탈해왕의 경주 계림과 역사적 통합을 이루고 ‘사로국’을 출범시킨다. 사로는 경주 및 낙동일대의 가야권을 제압해 나가는 동시에 백제와도 화친을 맺지만, 165년경 길선과 고시의 난이 이어지면서 적대관계로 돌아서고, 석씨 벌휴왕은 190년 백제의 강성 초고왕에게 ‘부곡대첩’에서 대패하고 만다. 광무제 사후의 중원은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쇠락해가고, 172년 요동 태수들의 침공 ‘좌원대첩’에서 명림답부가 이끄는 고구려군이 대승을 거둔다. 이는 10년 후 ‘황건적의 난’에 이어 백년전쟁 삼국(지)시대를 촉발한다. 위, 촉, 오 3국 간의 패권전쟁으로 좁혀지는 가운데 하북의 원소를 꺾은 조조는 207년 ‘백랑산전투’에서 오환족을 괴멸시키고, 가비능이 이끄는 선비와 ‘서부여’가 일어난다.
6권(중원의 쇠락) 편에서는 4백년 한(漢)나라가 망하면서 선비가 일어서는 시대가 펼쳐진다. ‘발기의 난’으로 고구려는 ‘공손연’에 낙랑을 내주지만, ‘위’의 사마의가 요동을 차지한다. 사로의 내해왕은 ‘금관가야’를 도와 ‘포상8국의 난’을 제압하고 동남권 맹주의 지위에 오르지만, 평화로운 시기에 여인들이 득세하고 262년 김(金)씨 미추왕의 시대가 열린다. 관구검의 2차 침공에 환도성이 불타자 동천제는 시원의 자결을 택하고, 280년 ‘서진’의 황제 사마염이 ‘오’를 멸망시키면서 삼국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 사이 서부여가 모용선비에게 망하고, 요동을 수복한 을불 미천제가 모용선비 토벌에 나서지만, 319년 ‘극성진공’에 실패하면서 선비의 굴기를 허용한다. 고구려는 모용황의 침공에 환도성이 불타고 주태후가 인질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한다. 요동의 전란을 피해 반도의 웅진으로 들어온 서부여의 백가제해 세력이 ‘한성백제’를 제압하고 ‘부여백제’를 열면서 4세기 한반도에는 이제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진다.
유명한 ‘삼국지’의 세계는 마치 우리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고구려의 수도를 북한의 평양으로 오인해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 고구려는 북경 일대 요동(낙랑)을 놓고 삼국지의 군웅들과 치열하게 다퉜다. 요동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소위 ‘반도삼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이 웅장한 역사를 누락시키거나 소홀히 다뤘다. 이것이 천년 반도사관의 원인이었다. 그 바람에 고구려의 신명선제를 비롯해 백제의 덕좌, 구지왕에 이어 신라의 사벌왕이 왕력에서 누락됐으니 전제군주시대의 사서가 지닌 한계였다. 소설 ‘고국’은 우리 고대사뿐 아니라 복잡하다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까지도 동시에 꿰뚫는 장점이 있다. ‘고국’ 4~6권을 통해 왜곡된 ‘삼국지’의 실체는 물론 잃어버린 고대사의 진실을 알아보고, 동시대의 당당한 주역이었던 조상들의 생생한 역사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오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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