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듯 전쟁은 현실이다. 세계는 한반도를 제2의 위험지대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조폭과 같은 세계다. 도덕과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지 힘과 자신의 이익만 존재하는 세계다.
2023년 7월 27일.
남쪽에서는 미국의 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이어 핵추진잠수함(SSN) 애나폴리스함이 입항했고, 북쪽에서는 러시아 국방장관과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열병식’이 열렸다. 북한은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등으로 무력시위까지 벌였다.
정전협정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 지 70년이 흘렀다. 그러나 ‘정전협정’이라는 어감이 주는 것처럼 한반도의 긴장은 여전하다. 북한은 사실상 세계에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8일 드디어 핵무기 법제화를 통해 남한을 향해, 그리고 미국까지 위협하고 나섰다.
최근에 출간된 이우탁 '긴급 프로젝트 한반도 핵균형론'은 이러한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90년대 1차 북핵 위기부터 줄곧 북핵 문제를 다뤄온 이우탁 연합뉴스 선임기자는 이 책에서 “지난 30여 년간 취재현장에서 북한 핵문제에 천착해온 필자에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반성을 함께 고백하게 하는 오늘의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자신의 동국대 박사논문을 다듬은 이 책은 ‘북한의 핵보유국화와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부제가 사안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약소국 북한이 미국과 협상과 대결을 거듭하며 끈질기게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고, 미중 패권경쟁 시기에 마침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자리잡게 된 역사적 배경을 심도 있게 풀어냈다.
이 책은 국제정치학의 세력(동맹)전이론에 기반한 ‘북-미-중의 전략적 3각관계’를 분석틀로 삼은 점이 눈에 띈다.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불을 뿜는 현재의 관점에서 중국 영향권 내에 북한이 속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에 대한 ‘지렛대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미국과의 대결전선이 공고해진 2020년 이후에는 (중국이)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 때마다 반대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미중 패권경쟁때문이라고 보았다. 미국에 맞설 사회주의 동맹국 북한의 가치를 감안해 핵무력 보유를 문제 삼지 않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핵보유국화 전략을 구사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210-211쪽)
특히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패권도전국 중국을 압박하고 굴복시키는 것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것”이며 “미국에게 북한의 ‘미끼’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것이 달라진 3차 핵위기의 속성”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하노이 노딜 이후에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지 않고 중국 때리기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 1,2차 북핵 위기 당시와 달라진 점이라고 해석했다.(196쪽)
뿐만아니라 저자는 “미국도 이미 완성된 북한의 핵무력 위협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경향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북한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묵인’의 형태로 핵보유국으로 존재할게 될 경우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핵균형의 변화가 현실화되는 의미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237쪽)
문제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하는 한국이다. 한국은 직접적인 북한 핵무력의 위협 대상이 됐다고 보는게 냉엄한 현실이라는 진단이다.(229쪽)
저자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 8장 ‘한반도 핵균형론’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확장억제 강화와 ‘핵공유’ △전술핵 재배치 △독자 핵개발 등을 검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 선언’(2023.4.26.)에 포함된 ‘핵협의그룹(NCG) 설립’ 수준이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어 국내 원전에 필요한 5% 저농축 우라늄은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 주소다.(259쪽)
정전협정 70년, 한반도는 여전히 ‘53년 체제’에 묶여 있고, 북핵 문제 역시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중국의 3각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다. 한반도 핵균형을 위한 한국의 선택지 역시 미국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형국이다.
저자의 대한민국 안보 현실 진단을 읽다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제국주의 열강의 제물로, 곧이어 세계동서쟁전의 희생양으로 동족상잔의 큰 전쟁까지 치르고, 치열한 체제경쟁을 하고도 여전히 분단도 해소하지 못한 한반도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은 학자든 기자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정전협정 70년’이 말해주듯 갈수록 역사적 맥락을 직접 체험한 학자도 기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에 몸담아온 저자가 한반도 핵균형론과 현 정부에 대해 휘두르는 필봉이 정곡을 찌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뉴욕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에 핵 응징을 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을 바탕으로 한국이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강구해야 한다. 북한이 미·중 전략 경쟁의 틈새를 파고든 것처럼 한국도 미국과 중국 관계의 변화를 잘 활용하는 안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310쪽)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지키고 살아가야하는 지 귀감이 되는 책이다.
오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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