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70년, “멈춤없는 도전경영으로 재계 2위 우뚝”

에너지·통신·반도체 이어 바이오까지 과감하게 뛰어들어 글로벌 기업 일궈…통신사업 특혜설도 실력으로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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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창업회장 어록(왼쪽)과 최종현 선대회장 어록 / 자료=SK


“구부러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다”(최종건 창업회장)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최종현 선대회장)

SK그룹이 8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오늘날 SK그룹이 국내 자산규모 2위의 대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최종건 창업회장부터 최종현 선대회장, 최태원 회장에 이르는 70년간 숱한 고난과 위기 상황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 삼아 과감하게 신성장동력 산업에 뛰어들어 글로벌 기업들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창립 70주년을 맞아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의 어록집 ‘패기로 묻고 지성으로 답하다’를 6일 발간했다. 이 책은 250개 대표 어록을 통해 평생 국가경쟁력 강화를 고민했던 두 회장의 유지가 어떻게 계승돼 SK가 재계 대표기업으로 성장했는지 조명한다.

▲아세테이트 공장 기공식에서 최종건 창업회장(왼쪽 다섯 번째)과 최종현 선대회장(여섯 번째) / 사진=SK


SK는 전쟁 폐허 속 조그만 직물공장에서 시작해 원사공장으로, 이후 정유·에너지와 정보통신, 반도체, 바이오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도전적 경영으로 자산규모 2위 대기업으로 우뚝 섰다.

첫 번째 퀀텀점프는 정유·에너지 분야에서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석유에서부터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천명, 수 차례 정유사업 진출을 모색했지만, 1·2차 석유파동 등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탄탄한 중동 인맥을 토대로 자원외교에 힘썼고, 2차 석유파동 때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하루 5만 배럴의 원유 공급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1980년 유공 민영화 방침이 발표됐을 때 선경은 안정적 원유수급 등 독보적 능력을 인정받아 인수권자로 선정됐다. 이후 유공은 1984년 예맨 마리브 광구에서 첫 유전 개발에 성공했고, 석유화학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왼쪽)이 1981년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가운데)과 논의하고 있다. / 사진=SK


SK 성장사에서 우여곡절이 가장 많은 때는 정보통신 사업 진출 시점이다. SK는 10년 이상 정보통신 사업을 준비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혜 시비로 사업권을 반납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4년 선경 미주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는 등 오랫동안 무선정보통신 사업을 준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92년 8월 SK텔레콤의 전신인 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된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사돈기업에 유망사업을 몰아줬다’는 특혜시비가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스스로 반납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한다. 1994년 1월 주식 공개매각에서 선경은 시가보다 훨씬 높은 주당 33만5000원에 한국이동통신 주식 127만5000주(23%)를 인수했다. 선경 내부에서도 비싸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는다. 회사 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2년 세계 최초 CDMA 2000 서비스 상용화 ▲2013년 세계 최초 LTE-A 상용화 등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우며 국내 대표 통신사업자가 됐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이 사업적 통찰에 기반한 결단으로 인수를 이끌어낸 케이스다. 2012년 인수 당시 SK하이닉스는 채권단 관리를 받으며 연간 2000억 원 대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SK 내부에서도 무리한 투자라며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반도체가 새로운 성장동력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내부를 설득하며 인수를 결정했다. 최 회장은 인수 후에도 업황 부진으로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2012년 청주 M12를 시작으로 2015년 M14(이천), 2018년 M15(청주), 2021년 M16(이천) 등 55조 원을 투자해 국내에 축구장 29개 크기의 반도체 공장 4개를 증설했다.

반도체용 특수가스(SK머티리얼즈)와 웨이퍼(SK실트론) 회사를 인수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 반도체 연관제품을 전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인수 10년 만에 매출 4배, 시가총액 6배로 규모를 키워 글로벌 대표 반도체 기업이 됐다.

또 하나의 도약은 바이오 분야에서다. 바이오산업은 과감한 결단과 지속적 투자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종현-최태원 회장 부자가 신약 분야에서 일군 성과의 의미가 남다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7년 SK케미칼(당시 선경인더스트리) 내에 의약사업본부를 신설하고, 1993년에는 미국 뉴저지에 SK㈜ 바이오연구센터를 구축했다. 1998년부터 SK그룹을 이끈 최태원 회장은 바이오·제약사업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02년 최태원 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우고, 독자적인 사업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최태원 회장의 의지에 따라 SK㈜는 2007년 SK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도 신약개발조직을 직속으로 뒀다. 2011년에는 이 조직을 SK바이오팜으로 분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SK케미칼은 1999년 국산 1호 신약인 위암 치료제 ‘선플라’를 선보였다. SK바이오팜이 자체개발한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이 2019년 미국에서 신약 허가를 받았다. 역시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가 2020년 미국 시장에서 출시했다. 30년 넘게 이어진 최종현-최태원 부자의 소신 경영이 이뤄낸 성과였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