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내일의 가능성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림 독서 여정-조민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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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우아한 삶'. 

지성인의 바람이다. 그러나 광속과 같이 변하고, 졸면 죽는다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현대에서 이러한 바램은 자칫 사치로 들린다. 

17년간의 신문기자 방송기자 생활을 과감히 그만두고, 지적탐구를 위해 작가로 변신한 조민진 작가의 글은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최근 펴낸 수필집 ‘내일의 가능성’은 동서고금의 교양서와 영화, 미술 등에 대한 백화사전적 독후감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많은 책, 영화, 미술 등에 대해 뿌려 놓은 섬세한 평은 어느새 우아함으로 변색 된다. 지적 내면을 통해 하나하나 터치하는 감성은 다채로운 인생의 예술 색이다. 

첫 페이지 ‘우아함의 기술’(사라 카우프먼 노상미 옮김)에서 “편안해야 우아해진”다는 작가의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무용 비평가인 미국 저널리스트 사라 카우프먼은 “우아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어느 날 책장에 꽂혀있는 ‘우아함의 기술’을 다시 들춰보고는 과감히 사표를 겸심했다. 

작가의 지적 감성은 ‘몽테뉴의 수상록’(미셀 에켐 몽테뉴, 안해린 옮김)에 대한 감상평에서 잘 드러난다. 남편이 먼저 읽은 흔적을 발견하고, 엷은 미소와 함께 감동 받는 모습은 한편의 우아한 그림이다. 퍼시 애들런 감독의 ‘바그다드 카페’는 혼자 보기를 추천한다. 외로움을 의식하면서 혼자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제 맛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땀을 닦는 여자와 눈물을 닦는 여자가 공감하는 장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고 말한다.

작가의 독후감 감상문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 한권. 영화 한편, 미술전시회를 본 느낌이다. 하나하나 읽거나 보지 않아도 이미 가슴속에 와 닿는다. 특히 ‘연애시대’(노자와 하사시, 진유화 옮김)의 하이라이트 대목은 그대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할 것 같아. 나. 너에게 두 번 다시 등 돌리지 않아. 네가 울 때 옆에 있어줄게.... 혼자서 슬퍼하게 하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네가 즐거울 때는 기쁨을 나눠줘...” 제임스 티소가 그린 ‘10월’을 보면서 황진이를 떠올리는 모습도 작가의 지적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 집에는 어림잡아 4000권 책이 소장돼 있다. 그는 책 한 권을 통해 얻는 행복감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호기심은 사온 책을 장식용으로 놓아둘 수는 없다. 그림 욕심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작가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서슴없이 책이라고 말한다.

‘냉정과 열정사이’(Rosso & Bio, 김난주 옮김)의 평에서 작가의 심성이 잘 드러난다. 아오이와 쥰세이가 피렌체 두오모 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10년이 흘러도 지키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특히 이 대목에서...“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어릴 적 읽었던 ‘몽실 언니’(권정생 지음)가 생각나 수십년만에 다시 인터넷으로 책을 구해 딸과 함께 읽고, 서평을 하는 모습에서는 멋진 엄마 그대로다. 딸의 서평은 그 작가에 그 딸이다. “난난이가 병에 걸려서 몽실언니 보다 더 불쌍해. 오래 병을 앓으면서 젊었을 때 누렸던 행복을 다 잃어버렸잖아. 아름다움도 사라지고, 남편도 떠나버리고....잠깐 행복했다 끝내 불행해진 게 더 불쌍해.”

작가는 웨인 다이어의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에 대해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행복은 얼마든지 상태나 감정과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는 ”나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해 읽는다. 알아가고,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차이를 발견하고, 깨달으면서 기쁘고 만족스러워진다“고 서슴없이 강조했다.

4부까지 이어지는 30여 편의 독후감과 감상평은 놓치기 어렵다. 그는 기자를 그만둔 건 무엇보다 직업에 대한 자신의 성실한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정으로 다시 살기 위해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다고 회고한다. 

17년의 언론인 생활은 열정 그 자체였다.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하는 석간 문화일보와 방송기자 JTBC에서 게으름은 사치다. 그는 퇴사 후에도 아침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행복’은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오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