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아리랑'을 애국가로 다시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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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안익태(安益泰, 1906~1965) 선생의 친일친나치행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애국가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최근 이해영 한신대 교수(57·국제관계학부)안익태 케이스-국가 상징에 대한 한 연구라는 책을 통해 그의 친일행적을 낱낱이 지적했다. 안익태의 친일 전력은 2006, 독일 유학생에 의해 확인되기 시작했다.

19429월, 안익태는 옛 베를린필하모니 연주회장에서 열린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베를린대학 방송관현악단과 라미(Lamy) 합창단을 지휘해 자신이 작곡한 '만주환상곡'을 연주한다. 무대 뒤에는 커다란 일장기가 걸려 있어 충격을 줬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이 음악회를 위해 안익태가 의뢰받아 만든 곡이이라고 쓰여 있다. 바로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큰 관현악과 혼성 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 ('만주환상곡'·'만주축전곡')라고 한다. 이 작품은 만주국 건국을 경축하고, 그것을 주도한 '구원자' 일본이 되찾은 평화와 만주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세계 신질서 확립을 일관되게 찬양하는 것이다. '만주환상곡' 마지막 악장 피날레의 합창 부분 가사는 만주국 공사 에하라 고이치(江原耕一)가 쓴 것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유럽에서의 안익태 활동' 배경으로 에하라가 "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고, ·일협회(獨曰協會)는 그를 후원하거나 연주회를 주최했다"고 설명했다.

평양 출신의 안익태는 일본과 미국유학을 거쳐 1937년 유럽으로 건너갔고, 19382월 더블린방송교향악단 객원으로 나중에 '한국환상곡'으로 알려지게 되는 자작곡 '교향적 환상곡 조선(Sinfonie Fantastique Korea)'의 초연을 지휘했다. 같은 해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에텐라쿠(越天樂)'(Etenlaku, Phantasie fur Orchester)'를 발표했다. "원래 에텐라쿠는 일본 천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연주된 것으로, 1878년 이후부터 근대 일본창가로서 남조 오충신(南朝 五忠臣)’이나 충효’() 등 천황에 대한 충성을 주제로 한 일본정신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친일인명사전)

이후 19432월 빈에서 '만주환상곡', 같은 해 5 이탈리아 로마 연주회에서도 그는 '에텐라쿠''만주환상곡'을 연주했다. 이 연주회는 일제에 의해 신징(新京) 중앙방송국을 통해 국내에도 방송되기도 했다. 그해 7, 그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정회원이 됐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안익태가 지휘한 연주회들은 거의 모두 "나치 독일과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지역에서 이뤄졌다"면서 "활동의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 연주회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던 1944년 열렸다"고 말했다. 제국음악원은 나치 시절 괴벨스가 주도한 '음악가 조직'이다. 안익태가 여기 입회할 수 있었던 것도 '외교관으로 포장한 베를린 지역의 첩보 총책' 에하라(江原)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는 1948815일 수립 직후 그의 노래를 애국가로 공식 지정했다. 19553'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80회 기념음악회' 지휘 차 귀국했고, 4월에 제1호 문화포장까지 받았다. 그는 5년 뒤 이승만의 '탄신 85회 음악회' 지휘를 위해 다시 왔다.

애국가는 역사성 없이 급하게 정한 느낌이 없지 않다. 따라서 차제에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고조선 이후 수천년 동안 살아 숨 쉬는 아리랑을 놓아두고, 우리의 영토를무궁화 삼천리로 규정한 것부터 마음에 안든다.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는 포기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국이 고조선은 물론이고 고구려, 발해, 백제까지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 않는가? 중국은 만리장성을 압록강까지 연결하는 조작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의 태강지리지낙랑군 수성현(遂城縣)에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는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고 명확히 쓰여 있는데도 말이다.

아리랑은 고조선 시대부터 살아 숨 쉬는 우리민족의 얼이 녹아있는 노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아리랑큰 나라라는 의미다. 한국(韓國)’ ‘대한민국(大韓民國)’이다. 우리민족은 항상 아리랑’을 나라이름의 보통명사로 썼다. 그곳에 흐르는 강의 이름은 아리수였다. 과거 신라의 도읍지 금성 현재 경주 시내에 있는 남천의 옛 이름은 알천’, 아리내이다. 과거 가락국 도읍지 중의 하나인 거창천의 이름도 아리스’, 과거 소문국이란 군소국가의 도읍지였던 의성의 강도 아리수이다.

단재는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북부여 왕과 유화가 만나 사랑에 빠졌던 아리수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7~8년 동안 북경도서관에 살면서 수천권의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해 아리수(阿利水) 위치를 확인했다. 첫 번째 아리수는 송화강, 두 번째 아리수는 압록강, 세 번째 아리수는 한강임도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이두문자로 아리는 아주 크다(Great Big)’는 뜻이고, 한자로는 (=클 한)’이며, ‘또는 을 뜻 한다. 따라서 아리랑=큰 나라=한국’, ‘아리수=큰 강=한강이다. 슬픈 현실은 아리수가 한강으로 변했고, 조선의 사대주의로 인해 한강(韓江)이 한강(漢江)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서울 역시 중국의 하나의 성을 자처, 한양(漢陽), 한성(漢城)으로 불렀고, 결국 아리수도 한강(漢江)이 됐다. 한남대교(漢南大橋)와 한남동(漢南洞)도 마찬가지다

애국가는 친일논쟁을 떠나 내용이 반도사관 일색이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일 것이다. 백두산~한라산까지 삼천리만 한국의 땅이라니... 또 국화가 된 무궁화도 그렇다. ‘진달래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원산지인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상징화했다. 북애의 규원사화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도 압록강 사방만리가 조선땅이라고 적혀있다. 중국 최고의 고서 산해경(山海經)’10여권의 중국 역사서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차제에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꾸자.

chang@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