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충격이다. KT의 관리 소홀의 책임 역시 크다. 서울 1/4과 고양시까지 유무선통신망이 두절, 대혼란이 일었다. KT망을 쓰고 있는 수많은 개인과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주말이라 다행이었다. 평일이었으면 전체 증권시스템을 정지시키는 ‘셧 다운’조치가 내려졌을 지도 모른다. 한국과 아시아의 경우 주말, 미국과 유럽은 장이 없는 주말 돌입 시점이었던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KT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부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에도 ‘수유역할’을 상당기간 해왔다. 지금도 유선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또 대한민국 ‘IT코리아’의 토대는 뭐니뭐니 해도 KT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모유(母乳)를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KT희생’의 결과물이다. 대안모색을 위해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 접속료정책이 불공정했다. 민영화 이전 유무선부분 접속료 산정은 80%(무선):20%(유선)으로 했다. 동생인 무선(KMT)부문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부시절 모바일민영화정책에 의해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이 SK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이러한 접속료정책은 그대로 유지했다. 1998년에야 70%:30%으로 수정됐다. 10%만 건드렸는데도 시장에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당시 접속료 시장은 7조 규모였다. 이동통신업계 한 CEO가 담당과장을 찾아와 “당신 때문에 한해 3600억 수입이 줄어들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한 일화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에 유선이 오히려 무선으로부터 핸디켑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되자 룰이 바뀐 것도 KT에게는 불행이었다. 정부는 접속료요율을 낮춰 접속료 시장규모를 2조3000억 수준으로 줄였고, ‘장기증분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장기증분방식은 영국식 통신정책이다. 골프처럼 후발사업자에게 핸디캡을 줘오다가 일정기간이 흐르면 동등하게 게임을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 통신정책은 번호와 접속료, 주파수 통신3대 정책이 모두 처음부터 편향되게 집행되는 우를 범했다.
둘째, 망중립성이다. 망중립성정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깔아놓은 초고속망을 모든 사업자들이 사실상 공짜로 쓰고 있다. 물론 SK브로드밴드와 LG텔레콤의 유선망도 있지만 KT망에 비할 바가 아니다. ‘IT코리아’는 ‘KT희생’의 토양에서 자란 셈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IT기업과 네이버도 카카오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서야 이들 포털사업자들은 사용료를 일부 내고 있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등 외국사업자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가면서도 무임승차하고 있다.
지난 6월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유튜브의 국내 월간 이용자 수는 2500만명으로 각각 390만명과 350만명을 기록한 네이버TV와 옥수수보다 6배가 많다. 페이스북 역시 지난해 SK브로드밴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 트래픽보다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영상만 해도 네이버는 동영상 점유율 3%를 차지하는데 반해 구글은 72%나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2016년 한 해 동안 망사용료로 각각 730억원과 300억원을 네트워크 사업자에 지불했다. 따라서 단순히 계산해도 구글은 연간 최소 4400억원의 망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국내 사업자들에 대한 역차별이고, KT 등 국내통신사업자들에 대한 약탈이다.
그러나 적반하장이다. 페이스북은 국내에서 KT통신망에 캐시서버를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상호정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KT가 갑자기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막대한 망사용료까지 지불해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협상이 여의치않자 KT는 캐시서버를 차단했다. 이에 따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들은 페이스북 접속이 불가능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소비자 불만이 팽배했음은 당연하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에 시정조치와 함께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그나마 이제야 국내통신사들이 구글 등과 망사용료 협상을 진행 중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국내 매출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좋은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례행사가 된 통신비 인하도 문제다. 초당 요금제 도입(2010년),기본료 1000원 일괄 인하(2011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시행 (2014년), 가입비 폐지(2015년), 선택약정 할인율 20%에서 25%로 상향 (2017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문재인 정권 역시 통신비인하 공약을 가장 먼저 실천에 옮겼다. 지난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 1년동안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상향(20%에서 25%로 상향) ▲취약계층 요금감면 확대·시행(저소득층 월 1만1000원 추가 감면 시행, 어르신 월 최대 1만1000원 신규감면 예정) ▲해외 로밍 요금 인하 ▲신용카드사를 위한 USIM 가격 인하 및 신용카드 결제수수료 경감 등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과 KT는 올해만 3~4%의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느 새 활기 넘치던 ‘IT코리아’모습은 ‘전설따라 삼천리’가 되고 있다. 결과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KT는 CEO가 바뀔 때마다 정례행사처럼 사람을 줄여왔다. 이계철 사장 1만6000여명, 이용경 사장 5500명, 이석채 회장 6000명, 황창규 현 회장 8000명. 그 결과 KT직원은 5만 6600명에서 2018년 3분기 2만3676명으로 줄었다.
넷째, 천학적인 주파수할당 대가도 통신산업 쪽박을 깨는 주범이다. 정부는 주파수 할당 때마다 경매를 통해 수조원씩을 각 통신사업자들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다. 또 정부는 통신사업자들로부터 매년 전파사용료로 2400억씩을 거두고 있다. 또 문제는 주파수대금을 상당부분 방송사프로그램지원비 등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통신산업은 독과점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힘들다. 어느 나라나 통신 서비스는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투자비와 운영비가 들어가는 시장으로 독과점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양대 이통사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고, 1위 통신사의 점유율도 50% 정도다. 한국 이통 3사의 이익률은 3~7% 수준이다. 미국은 18%, 일본은 16%대에 이른다.
여섯째, KT 유선전화 매출 감소는 우려스럽다. 2000년 7조6532억원, 2005년 6조1312억원, 2010년 4조3886억원, 2015년 2조3199억원, 2017년 1조8419억원으로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KT가 아직도 경쟁사보다 차원이 다르게 인력이 많은 것은 이익과 관계없이 공공제 성격이 강한 유선부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KT 노조는 황창규 회장이 유지보수 인력이 대폭 구조조정해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KT 아현지국 화재는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정부가 유선시장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KT CEO에 누가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CEO는 주가관리 등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책임이 있다. 기업입장에서 구조조정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더구나 KT는 민영기업이다. 공보다 의무만 묻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제2, 제3의 아현지국화재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될 수밖에 없다.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기대해본다. 더구나 우리는 ‘5G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 chang@da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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