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등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금융당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약 63억달러(약 8조 4438억 9000만 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킹으로 무단 유출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5일 금융감독원과 금융보안원, 관계 부처 및 금융협회, 5대 시중은행장 등이 참석하는 전 금융권 보안 점검회의를 개최한다. 금융권의 해킹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업권별 보안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이에앞서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거래소를 긴급 소집해 지갑 관리와 출고 승인체계를 점검했다.
이번 해킹은 가상자산 거래소의 보안 취약점이 온라인 지갑뿐 아니라, △내부 전산망, △임직원 업무용 단말기, △관리자 권한, △거래 승인 시스템 등 운영체계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넘어, 은행과 증권사 등 전통 금융권으로 점검 범위를 확대하는 이유다.
바이낸스 해킹에 내부 승인체계도 뚫려
5일 가상자산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생한 보안 사고로 핫월렛에서 약 63억달러 상당의 가상자산이 무단 출고됐다. 여러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가상자산 해킹 역사상 최대 규모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바이낸스의 초기 조사에서는 개발·운영 업무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의 업무용 노트북이 침해돼 내부 시스템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공격자는 거래소 내부의 출금 승인·서명 시스템을 악용해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외부 지갑으로 이동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거래소, 콜드월렛 비중 더 높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주요 가상자산사업자 등이 참석하는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업비트·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고팍스 등 주요 원화거래소와 코인마켓 거래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금융위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은 △전산 시스템 접근통제 △핫월렛 등 지갑의 출고 승인·서명체계 △관리자 권한 관리 △콜드월렛 보관 비중 △보험 가입 및 준비금 적립 현황 등이다.
금융위는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추가 조치를 당부했다. △이용자 가상자산의 콜드월렛 보관 비중 확대, △입·출고 거래에 대한 24시간 상시 모니터링, △이상 징후에 대응할 보안 인력과 조직 확충, △비정상 접근 시도의 신속한 보고 및 관계기관 간 정보 공유, △해킹 피해에 대비한 보험·공제 및 준비금 추가 확충 등이다.
현행 국내 가상자산업감독규정은 거래소가 이용자 가상자산 경제적 가치의 80% 이상을 인터넷과 분리된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콜드월렛 보관분을 제외한 이용자 가상자산 가치의 5% 이상을 보험·공제 보상한도와 준비금 등으로 확보해야 한다. 원화마켓 거래소는 최소 30억원 이상의 재원을 갖춰야 한다.
국내 주요 거래소의 콜드월렛 보관 비중은 △업비트가 99% 이상, △빗썸이 94%대, △코인원이 8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고팍스 등 일부 거래소는 80% 초반대다.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거래소별로 보관 비중을 추가로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내 거래소도 긴급 출금 제한 제도 손질” 논의
국내 거래소들도 바이낸스 사고 직후 대응에 나섰다.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등은 바이낸스로 가상자산을 전송하는 이용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상황에 따라 관련 출금을 제한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바이낸스의 입출금 상황과 관련 자산 이동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용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업계에서는 해외 대형 거래소에서 해킹이 발생했을 때, 국내 거래소가 이용자 자산 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출금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입출금 차단을 허용한다. 그러나 국내 거래소 자체 시스템이 공격받은 경우와 달리 해외 거래소에서 발생한 해킹 사고를 이유로 국내 거래소가 출금을 제한할 수 있는지는 해석상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업계는 외부 거래소 해킹이나 이상 징후가 확인된 경우도 긴급 출금 제한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융위도 이용자 보호를 위한 신속한 출금 제한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용자의 재산권과 거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해킹으로 인한 자산 유출을 막아야 하는 금융당국의 새로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내거래소 보안 사고, 투자액보다 실제 대응 역량이 중요”
국내 가상자산업계에서도 최근 보안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빗썸에서는 사내 업무지원 시스템에 외부인이 무단 접근해 임직원과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객 844명의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 신분증 사본 등이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과 고객 가상자산의 직접 탈취는 구분해야 한다. 중소형 거래소 프라뱅에서는 핫월렛에 보관된 약 1억원 규모의 고객 자산이 탈취돼 서비스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거래소들의 보안 투자도 늘고 있다. 제공된 정보보호 공시 자료에 따르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지난해 정보보호 투자액은 약 243억원으로 전년보다 64.7% 증가했다. 빗썸도 약 124억원을 투자했다. 두 거래소의 투자액을 합치면 약 367억원이다.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의 보험·준비금은 2026년 9월 말 기준 총 1854억원으로 집계됐다. 업비트 800억원, 빗썸 534억원, 코인원 300억원, 디지털엑스 190억원, 고팍스 30억원 순이다.
그러나 보안 투자액이나 준비금 규모가 크다고 해킹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이낸스 사례처럼 내부 업무 시스템과 출금 승인 권한이 공격에 악용되면 지갑의 보관 방식만으로는 피해를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리자 계정에 대한 다중 인증, 업무용 단말기 보안, 권한 최소화, 다중 승인·전자서명, 인공지능(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24시간 보안관제 등을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이라는 지적이다.
“한은도 은행·증권사 31곳 조사…가상자산 리스크 금융권 전반으로”
가상자산 보안 사고의 파장은 전통 금융권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3일부터 은행 18곳과 증권사 13곳을 대상으로 ‘금융기관 가상자산 시장 진출 현황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을 포함해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관련 조직과 예산, 사업 추진 현황, 시장 진출 계획, 국내외 가상자산 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 등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대규모 해킹이 발생해 영업이 중단되거나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금융회사에 어떤 손실과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이는 은행과 증권사가 가상자산 사업에 진출하거나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거래소의 보안 사고와 가상자산 가격 변동이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거래소와 은행·증권사 간 보안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금융회사 공동의 AI 기반 보안관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될수록 거래소의 보안 사고는 개별 기업의 손실을 넘어 은행의 수탁·결제·투자 업무와 금융시장 전체의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