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CAD 업계와 스마트팩토리 업계에 조용하지만, 묵직한 변화가 일어났다. 36년간 국산 CAD 소프트웨어(SW) ‘캐디안’을 개발해 온 캐디안이 16년간 제조 현장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온 위즈코어를 새 식구로 맞아 통합법인 ‘위즈코어’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각각 설계(CAD)와 제조 현장 데이터를 대표해 온 두 회사의 결합은 국내 제조 AX 분야에 적지 않은 의미를 던졌다. 통합 위즈코어 출범의 의미, 기술과 사업전략, 비전을 살펴보고 향후 국내 제조 AX의 전개 방향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캐디안과 위즈코어가 합쳐 통합 위즈코어가 출범한 이유는 단순히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설계에서 시작된 데이터가 생산과 품질, 유지보수까지 이어지는 제조 데이터의 흐름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통합 위즈코어의 최종 목표다.
위즈코어가 선언한 ‘엔드 투 엔드(End-to-End) 제조 AX 데이터 플랫폼’은 이 같은 목표에서 출발한다. 설계 도면, 생산 데이터, 품질 정보, 설비 상태, 작업 문서 등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AI가 이를 이해해 사람의 판단을 돕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명기 위즈코어 연구소 전무는 “산업 현장의 단절을 없애려면 분산된 데이터를 수집·표준화하고, 이를 의미 있는 관계로 구조화한 뒤 그 위에서 분석 및 최적화 모델을 운영하는 3개 층의 플랫폼 아키텍처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즈코어는 이를 위해 데이터, 온톨로지(Ontology), 모델 운영 체계(MLOps)라는 토대를 쌓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는 제조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다. 설계 도면부터 생산·품질·설비 데이터까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한데 모으고,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
이 단계의 핵심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정제·표준화·거버넌스를 통해 분석 가능한 상태의 데이터 자산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데이터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제품이 어떤 부품으로 구성됐고, 어떤 설비에서 어떤 공정을 거쳐 생산됐으며, 어떤 검사 결과를 받았는지를 연결하는 식이다. 데이터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면 ‘데이터가 있다’는 수준을 넘어 ‘이 데이터가 무엇과 관련돼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온톨로지가 이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연결된 데이터를 AI가 활용하도록 만드는 단계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고, 불량 원인을 추적하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측하도록 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모으고, 서로 연결하고, AI가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위즈코어가 구축하는 플랫폼의 핵심이다.
위즈코어가 온톨로지에 주목하는 이유
위즈코어가 데이터 플랫폼의 핵심 기술로 온톨로지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톨로지는 서로 다른 데이터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설계 데이터와 생산 데이터, 설비 데이터, 품질 데이터를 관계로 연결하면, 불량 제품이 나왔을 때 어떤 제품에서 불량이 발생했는지, 제품 설계가 최근 변경됐는지, 어떤 설비에서 생산됐는지, 공정 조건은 어땠는지, 과거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AI가 각각의 데이터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다. 통합 위즈코어가 캐디안의 CAD 기술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품의 형상과 부품 구성, 조립 관계 등 설계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는 제조 과정 전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설계 데이터가 제조 데이터와 연결되면 제품이 ‘어떻게 설계됐는지’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볼 수 있다. 위즈코어가 다른 스마트팩토리 기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박승훈 위즈코어 대표는 “위즈코어는 단절된 제조 데이터 흐름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독보적 솔루션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제조 AX에서 기본이 되는 캐드 데이터부터 제조 데이터까지 필요한 기술을 모두 보유한 것이 위즈코어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엔드투엔드 데이터 통합 및 분석 기술은 프랑스 다소시스템(Dassault Systèmes)이나 독일 지멘스(Siemens) 같은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만 보유해 온 영역이다.
AI가 답하는 제조 현장, 사람은 판단에 집중
위즈코어는 연결된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는 제조 현장의 문서와 데이터를 AI로 검색하고 질문할 수 있는 ‘Widdy’ 등을 통해 AI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앞으로 제조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더 복잡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현장 작업자나 관리자가 “지난주 특정 라인의 불량률이 갑자기 증가한 원인이 무엇인가?”, “현재 발생한 도면 치수 변경이 내일 가동될 설비 세팅값과 품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이 자연어로 질문하면, 플랫폼은 온톨로지가 구조화한 데이터 관계를 근거로 답변과 조치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위즈코어가 그리는 제조 AX의 최종 목표는 AI와 로봇이 제조 현장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하는 자율제조다. 하지만 단기간에 완전 자율제조가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장 데이터의 품질 문제부터 오래된 설비, 안전 문제, 예외 상황 대응, 서로 다른 시스템 간 연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위즈코어가 택한 방향은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다. 반복적인 데이터 정제·분석, 이상 징후 조기 탐지, 불량 원인 후보 추적, 최적 공정 조건 제안 같은 업무는 플랫폼이 지원하고, 사람은 AI가 제시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AI가 담당하는 영역을 점차 넓혀 자율제조에 가까워질 수 있다.

▲위즈코어는 국내외 주요 산업 전시회에서 제조 AX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열린 ‘STK 2026 스마트테크코리아’에 참가한 위즈코어 전시 부스 / 사진=위즈코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제조 AX 시장으로
위즈코어의 또 다른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다.
국내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기술과 사업 경험을 축적하는 동시에 베트남 법인의 성장세를 발판 삼아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 튀르키예, 헝가리, 독일, 브라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연구개발(R&D) 네트워크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인도 공과대학(IIT)과의 국제 공동 AI 연구개발 과제를 비롯해 ▲AI 네트워크 및 피지컬 AI(Physical AI) 기반 제조 현장 자율 운영 실증단지 조성 사업 ▲AI 에이전트 기반 열공정 자율 운영 플랫폼 개발 및 실증 사업 ▲광학 모듈 경화 공정 자율제조를 위한 피지컬 AI 기반 완전 무인화 및 예지보전 시스템 개발 등 굵직한 국책·글로벌 프로젝트를 잇달아 추진 중이다.
위즈코어는 향후 제조 AI, 디지털 트윈, 스마트팩토리, AI 설계 자동화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제조 산업의 디지털 혁신 수요에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박승훈 대표는 “캐드 엔진을 개발해 수출해 온 기술력과 그동안 쌓은 제조 데이터 정제 역량을 바탕으로 데이터 온톨로지 기반 제조 AX 시장의 표준을 제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제조 AX의 경쟁력은 개별 자동화 기능이나 단일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설계에서 제조까지 이어지는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히 구조화하고, 데이터 간의 의미 관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며, 현장의 질문에 얼마나 신뢰도 높은 근거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게 위즈코어의 판단이다. 캐디안과 위즈코어가 한 지붕 아래 모인 지 반년, 통합 위즈코어가 데이터·온톨로지·모델 층에 집중하는 이유이자 이 회사가 그리는 다음 목표이기도 하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