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결제수단 못된다”

FT, 신현송 BIS국장 인용하며 “화폐 아닌 ‘파편화된 조각’에 불과” 지적

최근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제 금융기구의 시각은 냉담하다.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스테이블코인은 구조적으로 결코 진정한 화폐가 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현재 테더(USDT)의 경우 이더리움, 솔라나 등 107개의 서로 다른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되는데, 이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 107개의 파편화된 코인(Fracturedcoin)이라는 것이다.

신현송 BIS 통화경제국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본질적 가치인 ‘단일성(Singleness. 동일한 화폐는 어디서나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특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며 “이는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블록체인 경제학의 필연적 결과”라고 진단했다. 신국장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으로, 현재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보고서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제도적 규제를 강화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화폐의 유용성은 ‘단일성’에 달려 있다고 신 보좌관은 생각한다. 그는 이전에도 스테이블코인이 단일성 구현에 실패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며 “이제 수식이 가득 담긴 실무 보고서를 통해, 이것이 단순한 버그가 아니라 제거할 수 없는 필연적인 특징(Feature)임을 증명하러 그가 돌아왔다”고 밝혔다.

화폐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놀라운 추상적 사회 기술이다. 하지만, 화폐가 유용하려면 우유 배달부에게 값을 치를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한다.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인 크라켄(Kraken)이 페드와이어(FedWire. 미 연준의 자금 이체 시스템) 접근권을 얻으면서, 미국인들은 곧 스테이블코인으로 우유 값을 지불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에 FT는 신 국장의 이 매혹적인 논문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했다고 게재했다.

FT에 따르면, 신 국장의 주장은 스테이블코인이 나쁜 기술이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이 ‘탈중앙화된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 구축되었다는 점에 있다는 것. 이 시스템은 합의를 유지하고 거래를 확정하기 위해 ‘검증인(validator)’이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보상이 지급돼야 한다. 

게다가, 블록체인이 인기를 끌수록 사용자는 이른바 ‘혼잡 통행료(Congestion rents)’, 즉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로 인해 화폐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약화된다는 것이 신 국장의 분석이다. 결국, 시스템은 분열된 형태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혼란인가?
서로 다른 블록체인 위의 스테이블코인은 상호 공동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더리움 원장에 있는 유에스디씨(USDC) 토큰은, 솔라나 원장에 있는 USDC와 가치가 같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대체 불가능한(Non-fungible) 토큰이다. 

테더(USDT)는 107개의 서로 다른 원장에 존재한다. 이는 곧 107개의 서로 다른 테더가 있다는 뜻이다. USDC는 125개에 달한다. ‘브릿지(Bridge)’라는 특수 소프트웨어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옮길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든다. 또한, 위험하다. 분석업체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2021년에서 2024년 사이 브릿지 해킹으로 인한 누적 손실액은 25억 달러(약 3조 7137억 5000만 원)가 넘는다.

결과적으로, 같은 발행자가 만든 스테이블코인은 여러 블록체인에서 대체 불가능한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유동성을 파편화시키고, 결제 수단으로서의 네트워크 효과를 약화시킨다.

“혼잡은 버그가 아니라 특징”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나온 ‘신포도’ 같은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신 국장의 논리는 꽤 탄탄하며 데이터와도 일치한다고 FT는 강조했다.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사용자가 내는 수수료인 ‘가스비(Gas fees)’도 상승한다. 이 수수료는 경매 방식으로 결정되기에, 수요가 몰리면 먼저 처리받기 위한 ‘입찰 전쟁’이 벌어진다.

신 국장의 모델을 보면, 혼잡도가 높아지면 비용에 민감한 사용자들은 더 저렴한 블록체인으로 이동한다. 반면, 보안을 중시하는 사용자들은 비싼 체인에 남는다. 네트워크가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탈중앙화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높은 수수료 = 높은 합의 문턱 = 더 나은 보안). 이러한 사용자 분열은 블록체인의 난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분열된다.

결국, 더 나은 블록체인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신 국장은 설명했다. 보안이 철저한 블록체인일수록, 검증인들에게 더 높은 보상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혼잡하게 유지해 높은 수수료를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신국장의 결론 및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고 FT는 해석했다.
첫째, 탈중앙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하며, 시스템이 탈중앙화될수록 인센티브 구조상 비용은 더 커진다.

둘째, 블록체인은 경제적으로 지속되려면 혼잡해야 한다. 레이어 2(블록체인에서 거래 처리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메인체인 위에 두는 보조 처리층) 솔루션도 혼잡을 없애지 못했다. 공통 유동성 풀도 없고, 공통 결제구조도 없다. 또다른 분열요인이 돼, 플랫폼의 파편화만 가중시켰다.

셋째, 이는 화폐의 사회적 가치와 상충한다. 화폐의 가치는 보편적 수용성에서 나온다. 블록체인의 구조적 파편화는 이 네트워크 효과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

FT는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의 ‘블록체인 트릴레마’ 개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탈중앙화, △보안, △확장성이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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