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대신 AI대화창에 “하이닉스 170만원 되면 10주 팔아줘”

증권사들 ‘오픈 API’ 바이브코딩 본격 경쟁…개인 자동매매 시대 성큼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전화 대신 AI대화창에 “하이닉스 170만원 되면 10주 팔아줘”

“하이닉스 주가가 170만 원 되면 10주만 팔아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주문을 실제 주식시장에 자동으로 실행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줄 알아야 했다. 투자자는 파이썬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나 이제 투자자는 대화창에 입력만 하면 된다. 

인공지능(AI)이 증권사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규격에 맞춰 코드를 자동 생성해 실제 주문까지 집행하는 시대가 열렸다. AI가 투자자의 자연어 명령을 코드로 바꾸고, 증권사의 오픈 API가 이를 실제 증권계좌의 시세 조회와 주문 기능으로 연결하면서다. 오픈 API는 증권사가 보유한 시세·계좌·잔고·주문 등의 기능을, 증권사 앱(HTS, MTS)을 거치지 않고 외부 프로그램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다.

전문 개발자와 기관투자자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프로그램 매매가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증권사들이 투자 기능을 외부 프로그램과 AI에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딩을 모르는 개인투자자도 ‘일상 언어’로 자동매매를 할수 있게 됐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토스증권·엔에이치(NH)투자증권·케이비(KB)증권·다올투자증권 등이 개인 고객을 겨냥한 오픈 API의 AI 연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자가 “최근 20일 이동평균선을 상향 돌파하고 거래량이 전일보다 2배 증가하면, 매수하라”고 AI에 입력하면, AI가 관련 코드를 만들어 증권사 API와 연동시켜준다. 

투자자가 전략을 정하면, AI가 이를 코드로 구현하고 API가 시장 데이터와 주문 시스템을 연결하는 구조다. AI가 정보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AI → API → 증권계좌 → 실제 주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투자 인프라 경쟁이다.

4년 만에 대형사까지 가세
오픈API 자체는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다. 2022년 한국투자증권이 업계 최초로 개인용 오픈API(‘KIS 디벨로퍼스’)를 내놓은 이후, 코딩에 능숙한 일부 투자자를 중심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1년 새 판도가 달라졌다. 지난 7월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잇따라 개인용 오픈API를 출시했다. 

토스증권도 지난 13일 국내외 주식을 하나의 API로 묶은 통합 서비스를 전체 고객에게 정식 개방했다. 다올투자증권은 별도 코딩 없이 대화만으로 시세 조회와 주문이 가능한 ‘모델 콘텍스트 프로토콜(MCP) 트레이딩’ 서비스의 사전예약을 받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바이브 코딩’의 대중화다. 개발 경험이 없는 투자자도 생성형 AI에 원하는 매매 조건을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짜거나 고쳐준다. 과거 소수 전문가의 영역이던 자동매매의 기술적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한투증권은 아예 챗지피티·클로드 등과 연동해 활용할 수 있는 샘플코드를 배포하고 있다. 이 회사의 API를 통한 일평균 거래대금은 국내외·파생상품을 합쳐 약 6300억 원에 달한다.

내 종목을 내 언어로 주문
이용 방식은 단순하다.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한 뒤, 보안 인증키인 ‘앱키(App Key)’와 ‘앱 시크릿(App Secret)’을 발급받아 AI 도구에 연동하면 된다. 

이후 대화창에 “내 주식의 주가가 10% 오르면 10주를 매도해”라고 지시하면, AI가 내부적으로 API 규격을 검색해 요청을 실제 주문으로 옮긴다. 보유종목과 시장흐름을 비교해달라는 등의 분석을 지시할 수도 있다.

“돈 안되고 비용 늘지만...”
문제는 수익성이다. 증권사 대부분은 API 호출 자체에 별도 수수료를 매기지 않는다. 거래가 늘면 위탁매매 수수료 총액이 소폭 증가하는 효과는 있지만, 뚜렷한 수익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반면 비용 부담은 뚜렷하다. 프로그램은 초당 수십∼수백 건의 조회·주문을 반복할 수 있어 다수 이용자가 몰리면 서버 트래픽 부하가 HTS, MTS보다 커질 수 있다. API 키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가 인증 정보를 허술하게 다루다 계좌가 노출되는 보안 사고 위험도 새로운 부담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이 앞다퉈 문을 여는 이유는 ‘고객 선점’ 전략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정 증권사 API에 맞춰 매매 시스템을 구축해둔 투자자는 다른 증권사로 옮기기 번거로워 자연스러운 락인(lock-in)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증시의 거래시간 연장과 24시간 거래 체제 전환 논의가 맞물리면서, 야간 시간대 대응을 자동화하려는 수요도 커지고 있다.

‘앱 잘 만든 증권사’에서 ‘연결 잘되는 증권사’로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오픈API 경쟁을 증권사 디지털 전략의 무게중심이 HTS·MTS 화면 경쟁에서 ‘투자 인프라’ 경쟁으로 옮겨가는 신호로 본다. 화면 편의성 못지않게, 고객이 원하는 투자 환경을 얼마나 자유롭게 구축하도록 지원하느냐가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다만 오픈API가 당장 보편적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AI가 코드 작성의 기술적 장벽을 낮춰주더라도,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실제 시장에 적용할지는 여전히 투자자 본인의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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