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리·니켈·코발트·우라늄 같은 실물자산이 가상화폐와 결합하고 있다. 광산업체와 기술기업들이 금속의 소유권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쪼개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이제는 채굴된 금속뿐 아니라 땅속에 있는 광물까지 토큰화해 광산 개발자금을 조달하려는 시도도 등장했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를 금속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광산업체에는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금속 실물자산토큰화(RWA)’ 시장이 열리고 있다.
디지털 금은 투자자들이 실물을 직접 인도받지 않고도, 해당 금속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산업체와 기술기업들은 지금 금·구리·우라늄을 비롯한 각종 금속과 연계된 가상화폐 토큰을 개발하고 있다. 금속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기업 경영진들은 이러한 흐름을 활용해 가상화폐 투자 열기와 광물 투자 열기를 결합하려 하고 있다고 FT는 밝혔다.
이들 프로젝트는 기존의 상품거래보다 훨씬 손쉽게 실물 금속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 홍보되고 있다. 동시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서 ‘실물자산(RWA·real-world assets)’ 시장에 진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광산 개발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을 토큰화하려는 움직임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열기를 새로운 자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가장 최근의 시도라고 FT는 설명했다. 이미 주식과 채권도 토큰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월가 역시 블록체인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디지털 금에 대한 규제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시장 토큰화를 촉진하고 런던의 세계적인 금 거래 중심지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비전문 투자자들에게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토큰화 자체가 복잡할 뿐 아니라, 광산업 역시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산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금속 토큰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한다.
“토큰화된 금의 흐름은 토큰화된 금에 대한 실제 수요라기보다, 토큰화된 금 상품을 출시하려는 흐름에 훨씬 더 가깝다”고 온라인 금 거래 플랫폼 불리온볼트의 리서치 책임자 애드리언 애시는 FT에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십 개의 금 연계 토큰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으며,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 소유권’ 직접제공한다는 토큰
브라질 마투그로수의 모리아 금광 등 일부 기업들은 광물이 아직 땅속에 있을 때부터 토큰을 판매하려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미 금을 실물로 보유할 때 발생하는 보관비용이나 관리문제 없이 금 가격에 투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수단이 금 상장지수펀드(ETF)다. 세계 금협회(World Gold Council)에 따르면 지난달 금 ETF의 전체 시장가치는 약 5300억 달러(약 750조2150억 원)에 달했다. 이 ETF들은 4000톤이 넘는 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ETF를 사는 것은 금 가격의 움직임에 투자하는 것일 뿐, 금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FT는 지적했다. 토큰화된 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디지털 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가장 큰 금 연계 가상화폐 토큰으로는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의 ‘테더 골드’와 △블록체인 결제·인프라 기업 팍소스의 ‘팍스 골드’가 있다. 두 상품 모두 토큰 1개가 금 1트로이온스(약 31.1그램)를 나타낸다. 토큰 보유자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실물 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상품의 규모는 아직 금 ETF에 비하면 극히 작다고 FT는 말했다. 테더 골드의 시장가치는 약 27억달러(약 3조 8226억 6000만 원), 팍스 골드는 약 19억달러(2조 6900억 2000만 원) 수준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의 규제·컴플라이언스 책임자인 케이틀린 바넷은 이렇게 말했다. “금에 투자하는 사람은 전통적인 투자자일 가능성이 아마 높을 것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전통적인 방법을 통해 직접 투자할 것이다”. 즉, 금 투자자에게 굳이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야 할 강력한 유인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금 이어 구리·니켈·코발트·우라늄
그럼에도 여러 기업은 금뿐 아니라 수요가 강하고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다른 금속을 토큰화하고 있다. 대상에는 배터리 핵심 광물인 코발트와 니켈, 그리고 원자력발전 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 등이 포함된다.
FT에 따르면, 금속 거래 플랫폼 메탈스닷아이오(Metals.io)는 우라늄·니켈·코발트 토큰을 발행했다. 조건과 관련 인허가를 충족한 보유자는 실물 금속으로 교환할 수 있다. 다만 고도로 규제되는 우라늄의 경우, 실제로 토큰을 실물 우라늄으로 인도받은 구매자는 아직 없다. Metals.io를 구축한 소프트웨어 기업 트릴리테크의 대체자산 부문 책임자 벤 엘비지는 “선물거래에 따르는 비용과 복잡성 없이 상품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며 이 토큰들이 투자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코발트와 우라늄 거래는 전통적으로 쌍방 간 장기계약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FT는 지적했다. 또 니켈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지만, LME의 거래 방식은 일반 개인투자자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엘비지는 토큰 수요가 두 부류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가상화폐에 익숙한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실물자산에 투자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 한다. 둘째는 기관투자자들이다. 그러나 실제 거래 규모는 아직 매우 작다. Metals.io의 누적 거래액은 2024년 12월 이후 약 2400만 달러(약 339억7680만 원)에 불과하며, 토큰 보유자는 약 9000명이다.
‘광산에서 지갑으로’…땅속까지 토큰화
보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있다. 나스닥 상장 금광기업인 블루 골드는 금을 “광산에서 당신의 가상화폐 지갑까지” 직접 전달한다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 회사는 사업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천 개의 토큰을 발행했다고 최고경영자이자 회장인 앤드루 캐번이 밝혔다.
하지만 현재 블루 골드는 새로운 장기 광산 프로젝트를 찾고 있다. 기존의 유일한 광산에 대해서는 가나 정부가 2024년 광산개발 허가를 취소하면서 정부와 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스닥 상장기업 데이터볼트 에이아이는 구리와 안티몬 등을 ‘아직 땅속에 있는 상태’에서 토큰화해 채굴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안티몬은 미사일, 배터리, 난연제 등에 사용되는 전략 광물이다. 데이터볼트 에이아이의 나다니엘 브래들리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선물 거래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기존 광산업체와 협력해 자금이 필요한 광산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할 예정이다.투자자는 토큰을 거래할 수도 있고, 광물이 실제로 채굴된 뒤 실물 금속으로 교환할 때까지 보유할 수도 있다.
브래들리 CEO는 전통적인 상품거래에는 막대한 서류작업이 필요하지만, “토큰은 그 모든 절차를 소프트웨어로 압축한다”고 FT에 주장했다. 회사는 향후 몇 달 안에 첫 토큰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광산업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
업계 일부에서는 이런 모델에 강한 회의론을 제기한다. 광산개발은 전문성이 필요한 복잡한 산업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가 광산 프로젝트의 실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세계금협회의 글로벌 시장구조·혁신 책임자인 마이크 오스윈은 이렇게 질문했다. “개인투자자들이 금 가치사슬의 일부를 자금조달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가?” 세계금협회 역시 디지털 금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시할 예정이었던 시범사업을 3분기로 연기했다.
또 다른 문제는 산업용 금속의 대체 가능성이다. 금은 일정한 순도와 형태를 갖추면 상대적으로 쉽게 서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구리·니켈·코발트 등 산업용 금속은 다르다. 최종 수요자가 원하는 금속의 순도·품질·생산지·원산지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엘비지는 앞으로 시장 수요가 온체인으로 이동하면 금속의 사양과 품질에 따라 Metals.io에서 서로 다른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즉, “같은 구리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가격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Metals.io의 인프라가 이런 차이를 반영하면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어디서 거래할 것인가’
금속 토큰화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FT는 보고 있다. 접근성과 유통성이다. 구리·알루미늄·니켈 같은 주요 금속은 이미 LME나, 시카고 선물거래소(CME)그룹의 뉴욕상품거래소(Comex) 같은 글로벌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금속 토큰은 모두 동일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블루 골드의 토큰은 현재 제3자 거래소가 아니라 자사 앱에서만 거래된다. 데이터볼트는 토큰 출시 이후 핀테크 기업 퍼페추얼스닷컴(Perpetuals.com)이 운영하는 업사이드온리 플랫폼에서 거래를 시작할 계획이다. Metals.io의 우라늄 토큰은 크라켄·게이트·쿠코인 등의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체이널리시스의 바넷은 가장 큰 발전 과제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꼽았다. 과거에는 특정 자산을 특정 거래소나 플랫폼에서만 살 수 있었는데, 이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모든 자산이 블록체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블록체인이 자산의 소유권과 거래 기록을 기록하는 데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