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 급락보다 무서운 건 ‘서사의 붕괴’

이코노미스트, “개당 12만 달러가 4달만에 7만 달러로. ‘체제 저항’ 사라져, 더는 ‘쿨하지 않아’”

나스닥 등 전통 자산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비트코인은 홀로 하락하고 있다. ‘크립토 윈터’가 시장을 덮치면서,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소외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기존 금융 체계의 대안’이라는 가상화폐의 상징적 가치가 희석되는 등이 원인이라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설명하는 비트코인의 외로운 폭락원인은 다음의 3가지다. 첫째는, 레버리지의 역습. 비트코인에 대한 과도한 차입 투자가 강제 청산으로 이어지며,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장지수펀드(ETF)의 배신. 시장을 견인하던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자금이 유출되며 하락장의 기폭제가 됐다. 셋째는, 사라진 ‘쿨(Cool)함’. 제도권 편입 시도로 인해 가상화폐 특유의 반항적 매력이 사라졌으나, 정작 기관 투자자나 중앙은행으로부터 금만큼의 신뢰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하락이 ‘일시적 조정’인지, ‘구조적 패러다임 전환’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레버리지 투자자들은 연쇄 청산 리스크를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한다.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동부 해안에 몰아친 매서운 바람은 곳곳의 기온을 수십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는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을 몰아넣은 ‘딥 프리즈(Deep freeze, 심각한 침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초 12만 4000달러(약 1억 7870만 8800 원)에서, 현재 약 7만 달러(약 1억 88만 4000 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전체 가상화폐 시장 가치는 2조 달러(약 2882조 6000억 원) 이상 증발했다. 과거에도 이 자산군이 급락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지지자들조차 어느 때보다 절망적인 모습이다.

이들의 고통이 이토록 깊은 것은 어떤 면에서 의아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45% 하락은 과거 기록에 비하면 최악의 하락은 아니다. 2021년 말 정점 대비 무려 77%나 폭락했던 적도 있었다. 당시 가상화폐 시장 가치가 신고점을 경신하는 데는 약 3년이 걸렸다. 현재의 약세장은 이제 겨우 4개월째다.

하지만 다른 자산군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했다. 2022년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다른 많은 이들도 함께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100 지수는 고점 대비 1/3 이상 하락했다. 

반면 현재 나스닥은 몇 주 전 세운 사상 최고치에서 고작 4%도 채 빠지지 않았다.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타격을 입긴 했다. 지금 가상화폐 팬들이 슬픈 이유는 그들이 ‘외톨이’가 됐기 때문이다.

이토록 변동성이 크고 투기적인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늘 어느 정도 미스터리하다. 그러나 레버리지(차입 투자)와 강제 청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급락이 시작되기 직전인 9월 말, 측정 가능한 가상화폐 담보 대출 규모는 약 740억 달러(약 106조 5526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12개월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며, 2021년 말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다 10월 10일을 기점으로, 손실이 깊어진 약 190억 달러(약 27조 3581억 원) 규모의 레버리지 베팅 물량이 빠르게 청산됐다. 이후 소규모 포지션들의 정리가 꾸준히 이어졌다. 

비트코인을 매수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주식을 발행하는 기업인 ‘스트래티지 인크(Strategy Inc)’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이 회사의 주가는 7월 이후 거의 70% 하락했다.

더 다양해진 가상화폐 상품군이 오히려 하락장을 심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4년 가상화폐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등장은 잠재적 구매자 층을 넓혀 가격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됐다. 

한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블랙록의 아이비아이티(IBIT·iShares Bitcoin Trust)는 10월까지 자산 가치가 거의 1000억 달러(약 143조 9300억 원)에 육박하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ETF가 됐다. 

하지만 지금 ETF는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80 거래일 동안 IBIT에서는 35억 달러(약 5조 375억 5000만 원)의 자금이 유출됐다. 이는 펀드 출시 이후 첫 장기 매도세다. 이 펀드에 투자된 자본 대부분은 현재 손실 상태다.

가상화폐를 압박하는 마지막 요인은, 수치화하기 가장 어렵다. 하지만, 바로 ‘분위기(vibe)가 꺾였다’는 점. 펀더멘털 가치나 수익 창출 잠재력이 없는 투기적 자산군에게, 무형의 ‘아우라’는 전부와 같다. 그런데 한때 디지털 자산을 감싸고 있던 흥분의 아우라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부분적으로 가상화폐가 특유의 ‘반항적 기질’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과 그 가족은 특정 자산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카운터 컬처(Counter-culture)’라고 부를 수 있겠나? 

블록체인 플랫폼 이더리움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호스킨슨은 지난달 이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 시스템의 일부가 되면, 시스템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않나? 그것을 ‘멋지지 않게(not cool)’ 만들어버린다”고.

일부 기업에 있어 가상화폐의 ‘고루해진’ 평판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결제를 용이하게 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에게, 제도화는 도움이 됐다. 그러나 비트코인 같은 자산은 멋진 매력을 잃은 반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시스템’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시스템에 완전히 수용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전문 투자자들은 여전히 가상화폐를 멀리한다. 지난 9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펀드 매니저 대다수가 가상화폐 비중을 전혀 두지 않고 있었다. 응답자들의 전체 포트폴리오 가치 중 디지털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0.4%에 불과했다.

한편, 중앙은행들은 금(gold)을 사들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위협, △제재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한때 ‘법정 화폐’의 대안이 되겠다던 디지털 자산은 추위에 떨며 소외됐다. 체코 중앙은행이 지난해 처음으로 가상화폐 매입을 공표하며 실험적으로 100만 달러(약 14억 3850만 원)라는 소액의 비트코인을 사들였을 뿐이다. 그 이후 추가 매수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디지털 자산은 그동안 수많은 경제 칼럼니스트들의 사망 선고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훨씬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거듭된 약세장 속에서도 전면적인 붕괴 예측을 비웃듯 버텨왔다. 하지만 이번 크립토 윈터가 유독 쓰라리게 느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는 한, 해빙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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