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월렛의 지배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FT, “금융·개인·시민 정보까지 ‘디지털 지갑’ 하나로 통합될 것…이탈은 사실상 불가능”

디지털 지갑은 가상화폐 저장의 수단을 넘어, 정체성·금융·사회·정부 시스템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 가상화폐 지갑(crypto wallet)은 중개자를 없애, 지갑 설계자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는 구조.

이 디지털 지갑과, 이와 병행한 디지털 정체성 인프라의 설계권이, 향후 자유·경쟁·데이터 통제의 핵심 쟁점이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게재했다. 미국 보스턴 연준의 금융 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현재 미국 세튼홀대 경제학과 조교수인 대니엘 잰잴러리(Danielle Zanzalari)의 기고를 통해, FT는 “미래의 자유는 누가 지갑을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 입안자들이 가상화폐 규제 방식을 두고 논쟁하는 동안, 훨씬 더 중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FT는 진단했다. 누가 당신의 디지털 지갑을 장악하고, 그 지갑을 통해 당신의 정체성과 생활을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 바로 그것.

디지털 지갑은 단순히 가상화폐 토큰을 담는 공간이 아니다. 정체성을 인증하고, 금융·사회·정부 시스템에 당신을 연결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다. 

얼핏 보면 애플이나 메타가 이미 우리의 디지털 생활을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 그 힘은 제한적이다. 예컨대 애플의 디지털 지갑 영향력은 크지만, 은행·결제 네트워크·경쟁 플랫폼 등으로 인해 견제받는다.

반면, 가상화폐 지갑은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이 지갑은 중개자를 제거하고, 사용자를 웹사이트가 아니라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앱에 직접 연결한다. 즉, 지갑을 설계한 주체가 디지털 경제 참여 여부를 좌우하는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는 구조다.

지금은 가상화폐 지갑을 소수의 이용자만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사용이 늘고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CBDC)를 개발하면, 디지털 경제의 핵심 관문은 결국 지갑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 지갑은 금융·개인·시민 정보를 모두 통합할 수 있다. 당신의 운전면허증이나 건강기록을 인증하는 것과 동일한 기술이 또한, 특정 결제의 승인 여부를 판단하고, 서비스 이용을 위해 어떤 데이터를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런 통합 수준은 지갑을 만든 이가 누구든, 일상생활의 조건을 설정하는 막대한 권력을 준다.

리플(Ripple) 같은 일부 블록체인 기업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기존 결제 시스템을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지갑 모델을 사용한다. 이를 잘 설계하면, 결제는 더 빠르고 상호운용적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단일 주체가 모든 권력을 쥐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핵심 문제는 시장지배력이다. 만약 가상화폐 지갑이 새로운 경제의 입구 역할을 하고 그중 하나가 시장을 독점한다면, 이 시스템을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패턴은 가설이 아니다. 이미 여러 번 발생했다. 소셜미디어·모바일 운영체제의 독점은 이를 보여준다. 플랫폼은 사용자보다, 스스로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그래서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 논쟁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것. 정치인들은 여전히 토큰의 성격을 정의하는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래·결제·인증에 사용하는 기반 인프라를 누가 설계하고 통제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외면하고 있다.

국가마다 이 문제에 전혀 다른 해답을 내놓고 있다. 중국의 2020년 국가 지갑은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가 가능하며, 국가 안보기관이 접근할 수 있다. 즉, 감시와 정치적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반면, 유럽의 디지털 정체성 프레임워크는 정부가 지원하는 지갑을 제공하면서, 상호운용성 기준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중국식 감시는 피하지만, 여전히 정부가 상당한 권한을 가진다.

문제는 이런 파트너십이 정부나 대기업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통제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은 경쟁과 개인 자유를 기반으로 디지털 정체성을 설계하는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프라이버시·상호운용성의 개방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만들고, 민간 기업이 혁신으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이 진짜 시험받는 영역은 가상화폐 규제가 아니라고 FT는 재차 강조했다. 그것은 디지털 결제 인프라에 대한 감독을 통해 미국인의 온라인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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