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업경영의 중심은 커뮤니케이션”

WSJ, “홍보임원이 제품전략·ESG·IR·위기관리에 AI 대응까지 주도”

인공지능(AI) 시대와 초연결 사회가 도래하면서, 기업의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Chief Communications Officer)가 경영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언론대응에 치중하던 CCO는 이제, 제품 설계, 브랜드 전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자 관계(IR), AI 대응, 위기관리 등 경영 전반으로 업무영역을 크게 넓히고 있다.

CCO는 영화 '대부'에 나오는 마피아 조직의 콘실리에레(consigliere·핵심참모)같은 역할을 주요 기업에서 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밝혔다. 더 이상 보도자료나 쓰고 언론보도를 조율하는 주변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미국 CCO의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직보 비율은 47%로 급증했고, 제품 전략을 주도하는 등 경영의 중심이 돼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다.

WSJ에 따르면, 미국 데이팅앱 ‘힌지’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Chief Marketing Officer)로 승진한 타미카 영은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직함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최고마케팅·커뮤니케이션책임자(CMCO·Chief Marketing and Communications Officer)’가 되기를 원했다. 엠티브이의 홍보 담당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마케팅 역할의 일부로 포함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며,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단순한 참여 지표나 광고 캠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이 청중들과 신뢰를 쌓으려 하고, 그것의 많은 부분은 메시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과거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이제 경영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WSJ는 강조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CEO들이 아주 작은 실수 하나도 순식간에 기업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투자자 메모, 광고 카피, 보도자료, 회사 소셜미디어 계정, 그리고 최근에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결과물까지 뒤섞이면서, 기업 경영진들은 기업의 서사(내러티브)를 최고위 차원에서 더 잘 통제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5년 조사에서 CCO의 절반 가까이가 CEO에게 직접 보고한다고 답했다. 이는 2023년 40%, 2015년 37%에서 꾸준히 상승한 수치다. 이는 헤드헌팅·컨설팅 회사인 콘페리의 조사 결과다.

수십 년 동안 마케터들의 ‘신데렐라 자매’처럼 소외받아 온 CCO들은 이제 재무·운영 임원들이 주로 채워오던 상위 직책으로 올라서고 있다.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CCO 로베르타 톰슨은 작년 ‘하스브로 AI 스튜디오’의 CEO로 임명됐다. 우버는 5월 질 헤이즐베이커를 마케팅·커뮤니케이션·정책 총괄에서 신설 직책인 ‘사장 겸 최고기업담당책임자(President & Chief Corporate Affairs Officer)’로 승진시켰다.

갭, 펠로톤, 스테이트팜, 액센츄어, 레딧 등 대형 기업들도 최초의 CCO를 최근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샤넬도 작년 6월 영국 출신의 루스 워더를 사상 최초의 글로벌 CCO로 임명하며 “점점 더 복잡하고 파편화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의 전문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 새로운 역할은 부사장이나 커뮤니케이션 수장 같은 직책들이 갖던 언론·홍보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훨씬 더 넓은 권한을 갖는다. 기업 내에서 이 역할은 사장 및 CEO의 핵심 참모로 자리 잡고 있다. CEO들은 이제 인플루언서의 잘못된 기용에서부터, 햄버거 먹을 때의 충분한 열의 부족까지 사소한 실수도 기업 평판과 매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지난 2023년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협업으로 인한 버드라이트 불매운동으로 타격을 입었다. 그해 2분기 미국 매출이 10.5% 급감했고, 5월까지 시가총액 270억 달러(약 41조 2155억 원)가 증발했다. 이 회사는 2023년 11월 군 출신 인사를 최초의 CCO로 임명했다. 기존에는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법무·기업담당 조직에 소속돼 있었다. 이제 많은 기업들이 ‘제2의 버드라이트’가 되는 것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굿이어의 CCO 트래비스 파먼은 “예전에는 메시지를 보낼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측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청중이 너무 양극화돼 있어서 메시지를 내보낼 때 ‘어떻게 해석될까?’뿐만 아니라 ‘어떻게 오해될 수 있을까?’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팀은 △온라인상의 평판 위기를 모니터링하고, △경영진의 결정을 직원들에게 전달하며, △언론 및 유튜버·뉴스레터 운영자 등 외부 크리에이터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소셜 미디어의 빠르게 움직이는 트렌드를 파악해, 마케팅·디자인 부서에 피드백하는 역할도 한다.

야후의 CCO 소나 일리프-문은 엔지니어·제품 관리자들과 함께 하는 회의에 자주 참석한다. 평범하고 때로는 냉소적인 소비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야후의 AI 어시스턴트 ‘야후 스카우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팀과 함께 초기 버전을 테스트하고 답변의 질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했다. “내 역할은 단순히 제품 출시 시점이나 이후에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품이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진정으로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CCO들은 또한 챗지피티, 클로드 등 AI 챗봇에서 자사가 유리하게 검색되도록 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이를 위해 회사 웹사이트, 기업 뉴스룸, 보도자료 등을 LLM을 염두에 두고 편집한다.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제노의 지난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 리더의 약 절반이 조직의 AI 변화 관리 프로그램을 이끌거나 협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하지만 급증하는 업무에 비해 자원은 부족하다. 연구그룹인 콘퍼런스보드의 2월 설문에서 CCO의 33%만이 예산 면에서 잘 갖춰져 있다고 답했다. 같은 설문에 대한 CMO의 응답은 50%였다. 업무량에 만족한다는 CCO는 34%에 불과하다. 1년 전(52%)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다.

그러나 급여는 업무량과 함께 오르고 있다. CCO 기본급의 중앙값은 40만~45만 달러(약 6억 968만~6억 8589만 원)로 2년 전보다 12~14% 상승했다. 2015년에는 CCO 중 단 2%만이 기본급 62만5000~80만 달러(약 9억 5262만 5000~12억 1936만 원) 구간에 속했지만, 2025년에는 7명 중 1명꼴로 연간 200만 달러(약 30억 4840만 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굿이어의 파먼 CCO는 이 직책이 주는 드문 특권을 WSJ에 이렇게 표현했다. “상사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때때로 스스로를 ‘최고 진실 전달자(Chief Truth Teller)’라고 부른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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