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미국 은행업계에서 단순 자동화를 넘어, ‘디지털 직원(digital employee)’으로 진화하며 본격적인 업무 수행을 시작했다. 이들 디지털 직원은 실제 은행원들처럼, 계정, 보고체계, 자율성 등을 갖추며 ‘노동력’으로 편입되고 있다.
뉴욕 멜론 은행(BNY Mellon)과 제이피모건(JPMorgan Chase) 등 대형은행들이 AI 기반의 디지털 직원을 고용, 사람들과 협업을 개시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금융산업 전반에서는 AI와 인간 간의 업무 분담 및 통합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 디지털 직원에 대한 접근 권한, 관리 방식, 새로운 운영 모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WSJ에 따르면, BNY는 회사 로그인 계정을 가진 AI기반의 ‘디지털 직원’ 수십 명을 정식 직원처럼 채용해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로그인 계정을 부여받고, 전담 관리자를 통해 보고 체계를 갖춘 채 인간 직원과 나란히 일하고 있다. 코드 작성 및 결제 지시 확인 등에서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BNY 최고정보책임자(CIO)인 리앤 러셀은 “디지털 직원들이 곧 이메일 계정 및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스(Microsoft Teams)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 동료와의 소통 기능도 갖게 될 예정”이라며 “아직 기술의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이들 AI는 6개월 안에 매우 일반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직원’을 다른 은행들은 ‘AI 에이전트’ 등으로도 지칭한다. 금융업계에서 이 용어는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 하지만, AI 기술이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일부 은행은 BNY처럼 AI에 아직 완전한 로그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AI를 인간과 유사한 기능 및 업무 흐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리서치 같은 분야에서 업무를 분담시키고 있다. 제이피모건 등은 아직 시스템 접근, 관리 체계, 그리고 AI의 인간 유사성 수준에 대해 조율 중이라고 WSJ에 밝혔다.
BNY는 ▲코드의 보안 취약점을 수정하는 역할과 ▲결제 지시를 검증하는 역할의 두 AI 디지털 직원 페르소나(persona)를 개발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각각의 페르소나는 수십 개의 인스턴스(instance)로 존재한다. 각 인스턴스는 특정 팀에만 배치돼, 회사 전체 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은 제한된다.
자체 로그인 기능을 가진 이들 디지털 직원은 인간 직원처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한 ‘디지털 엔지니어’는 ▲시스템에 로그인해 보안 취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코드를 작성한 후 ▲시스템을 통해 관리자에게 결과물을 제출한다.
BNY는 향후 디지털 직원에게 이메일, 마이크로소프트 팀스 등 기업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관리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코딩과 결제 검증 외에도 다양한 영역으로 AI 직원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제이피모건도 점점 자율성이 높아지는 AI 도구를 도입 중이다. 직원용 AI 비서, 고객용 AI 안내 시스템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고 분석 책임자인 데릭 월드런은 디지털 직원에 대해 “AI 도구를 인간에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좋은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간도, 기존 소프트웨어도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시스템 접근 및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접근 권한을 줄지에 대한 문제는 “상황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제이피모건은 미래에 모든 직원이 AI 비서를 갖고, 모든 고객이 AI 컨시어지서비스로 안내를 받는 세상을 상상하고 있다. 현재 제이피모건의 23만 명 직원은 자사 AI 플랫폼을 통해 내부의 AI 챗봇을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직무별 맞춤형 자율형 AI 버전이 구축될 예정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금융서비스 부문 매니징 디렉터인 스콧 멀린스는 “디지털 직원과 인간 직원 간의 통합이 금융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 과제”라며 “이들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어떻게 관리하고 지시를 내릴 것인가, 운영 모델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현재 금융산업 전반의 과제”라고 WSJ에 강조했다.
한편,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생성형 AI에 대해 “경제와 노동시장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