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공지능(AI)이 돈을 창출하는 시대’에 대비하지 못할 경우, 통화정책의 실효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AI가 머지않아 각국 경제의 통화 공급량을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전문가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AI가 신용을 승인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금융거래까지 주도하는 시대가 몇 년 내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우려하고 나섰다. WSJ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조지 메이슨대 금융학과 데릭 호스트마이어(Derek Horstmeyer) 교수의 기고를 최근 게재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연준은 AI가 신용을 결정하고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를 간과하고 있다. 개인 AI와 금융 AI 간의 자동 거래는 섀도우 뱅킹(Shadow Banking·은행이 아닌 기관에서 하는 신용 중개)에서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연준의 통제 밖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확산과, 이를 제도화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의 통과는 AI 간의 거래를 가상화폐 코인 기반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마존, 월마트 같은 대기업들이 이를 겨냥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 한다. 연준은 AI 기반 경제의 통화 관리 시나리오를 조속히 마련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정책 무력화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WSJ는 강조했다.
연준이 AI 기반 경제의 통화 관리 시나리오를 적시에 관측하거나 개입하지 못한다면, AI 간의 거래와 가상화폐를 통해 통화가 창출되고 소멸되는 현상을 놓치게 된다. 이는 금리 정책의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AI가 연준의 금리 조정에 인간처럼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WSJ은 “여러분의 컴퓨터가 대출을 받는 시대가 곧 도래할 수 있다”면서 “은행의 컴퓨터는 그 대출을 승인할 것이다. 수백만 건의 이런 거래가 통화의 공급량을 결정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미국 연준의 총재들은 AI가 생산성, 은행 고객 서비스, 노동시장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분명히 밝혀왔다. 하지만 WSJ에 따르면, 연준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AI 관련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이는 바로 AI가 화폐와 신용을 창출하는 능력, 즉 경제의 통화 공급량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공상과학소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AI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신용 공급과 실질적인 통화 공급을 통제하게 될 전망이라고 WSJ은 진단했다. 이는 연준에 매우 중대한 문제다. ▲AI의 의사결정 방식이 불투명하거나,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을 따르도록 강제할 수 없다면, 연준의 정책 통제력은 크게 약해지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구체적인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개인들은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듯이, 각자의 AI 비서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AI의 행동에 대한 가드레일(안전장치)이 마련되고 기능이 개선되면, 사용자들은 AI를 구매 대리인으로 활용해 신용의 사용 권한을 위임할 것이다.
은행 측에서는, 대출을 승인할지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 업무가 AI에게 맡겨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AI는 신용 평가를 하고, 대출을 해줄지, 혹은 신용 구매를 승인할지를 결정한다. 이런 수백만 건의 의사결정이 합쳐지면, AI는 통화공급 확대나 축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먼저 ‘섀도우 뱅킹’ 영역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WSJ은 내다봤다. 이곳은 규제가 느슨한 핀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형태의 신용 창출을 실험하고 있는 공간이다. 연준의 직접적인 통제 밖에 있다.
최근 상원을 통과한 지니어스법은 이러한 전망을 더욱 현실화시켰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산업을 제도화하려는 것. 스테이블코인은 미 재무부가 보증하는 가상화폐로, 거래를 기존 은행 시스템 바깥의 블록체인에서 처리하게 해준다.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기업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뛰어들면서,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을 완전히 우회하는 거래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연준은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AI 구매 대리인’이 ‘AI 신용 심사자’와 서로 상호작용하는 상황. 이때 이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AI의 행동을 지시하는 코드와 ▲사용자의 명령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규제가 거의 없는 통화를 사용하며, 기존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는다. 이런 거래는 섀도우 뱅킹 영역에서 이뤄지기에, 연준은 통화 공급량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중앙은행이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관찰해야 하는 핵심 요소.
그리고 AI가 금융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연준의 정책 변화에 대해 인간처럼 반응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과거 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기반하지만, AI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물론, AI 의사결정에 대한 보험 상품 등 일부 민간 부문의 해결책이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준이 AI의 통화 창출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면, AI 주도 경제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연준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지니어스법이 제정되면 상황은 더욱 긴박해질 전망이다. 개인용 AI 상품의 보급 속도를 고려할 때, 이 현실은 머지않았다. 만약 연준이 섀도우 뱅킹의 혁신 영역과 AI 통화 창출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명확히 수립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 후에서야 깨닫게 될 것"이라고 WSJ은 목소리를 높였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