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금리를 낮추기 위해 은행 창구를 찾아 사정하거나, 모바일 앱을 뒤져 직접 신청서를 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각 은행들이 인공지능(AI)과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신용 점수가 오르거나 소득이 늘어난 것을 먼저 파악하고, 고객을 대신해 금리를 깎아주는 ‘금리인하요구권 대행 서비스’가 금주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했다.
26일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금리인하요구 대행 서비스를 개시했다. 신한·농협·기업은행은 23일부터 이를 시작했다. 하나은행도 올 상반기 중 이를 도입 예정이어서, 5대 시중은행 모두 ‘금리 자동 인하’ 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마이데이터 기반 금리인하요구권 대행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면서 제도적 길을 텄다. 당국은 연간 약 1680억원의 이자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서비스의 핵심은 ‘마이데이터’다. 마이데이터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유한 기업·기관에 그 정보를 당사자가 원하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 고객이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놓은 자산과 소득 정보를 한곳에 모아 분석함으로써, 금리를 낮출 조건이 충족되는 즉시 은행이 먼저 움직이는 구조다.
AI가 신용 개선 상시 점검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 이후 소득 증가, 신용점수 상승, 부채 감소 등 상환능력이 개선됐을 때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신용 개선 사실을 확인하고 금융사별로 개별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활용률은 낮았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5대 은행의 평균 수용률은 29.6%에 그쳤다. 10명 중 3명만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은 셈이다.
현재 서비스에 나선 곳은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다. 각 은행 별 서비스 특징은 이렇다.
국민은행 – “타행 대출까지 한 번에”
국민은행은 케이비(KB)스타뱅킹에서 ‘금리인하요구권 대행 서비스’를 출시했다. 고객이 한 번 동의하면 타 금융사 대출까지 마이데이터로 연동해 정기 점검한다. △금리 인하 요건 충족 시 자동 신청, △거절 시 사유 분석 및 개선 방안 제시, △신용 개선 시 자동 재신청 등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가 ‘왜 거절됐는지’까지 안내받는 구조다.
신한은행 – “AI 분석 기반 상시 추적”
신한은행은 쏠(SOL)뱅크에서 마이데이터 자산을 연동하면 AI가 신용 상태 변화를 추적한다. △조건 충족 시 자동 신청, △미수용 시 재점검 후 재신청, △신청부터 결과 안내까지 원스톱 처리 등 신청 속도와 승인율 제고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농협은행 – “AI 대출금리 케어”
농협은행은 ‘AI대출금리케어’를 도입했다. △AI 에이전트가 자산·부채 분석, △인하 요건 충족 시 자동 행사, △NH올원뱅크·NH스마트뱅킹에서 1회 동의로 이용 등이 장점이다. 수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농협은행(42.9%)이 자동화까지 더해지며 체감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은행 – 자동분석체계 구축
우리은행은 2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나은행은 상반기 내 출시를 예고했다. 양행 모두 마이데이터 기반 자동 분석 체계를 구축 중이다. 핀테크 업체인 토스 역시 23일부터 실시간 신용 분석을 통한 자동 신청 서비스를 개시, 플랫폼 경쟁에 가세했다.
관건은 ‘알림’ 아닌 ‘실제 승인율’
소비자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직장인 이모(38)씨는 “대출받을 땐 ‘갑’이었던 은행이 먼저 금리를 낮춰주겠다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큰 변화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제도 남아 있다. 서비스가 단순히 ‘자동 신청’에 그치고 실제 ‘승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실망감이 커질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마다 제각각인 심사 기준을 표준화하고, 거절 사유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후속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마이데이터 연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승인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정교함이 서비스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를 선제적으로 낮춰주는 경험은 기존 고객을 자사 앱에 묶어두는 ‘락인(Lock-in)’ 효과가 크다”며 “앞으로 승인 속도와 인하 폭을 둘러싼 은행 간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