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현무암 사이에서 피는 설앵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진=조용경
저는 2005년경부터 매년 5월 초에서 중순 사이가 되면, 제주도로 날아가 영실을 통해 한라산 윗세오름을 오릅니다. 부득이하게 가지 못할 때는 한동안 가고 싶어 몸살을 앓기도 하지요.
노루샘이나 선작지왓의 현무암 바위들 사이에서 가늘고 긴 꽃줄기 끝에 매달리듯 피는 연보라색 혹은 자주색의 '설앵초'가 보고 싶어서입니다.
설앵초는 쌍떡잎식물이며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이른 봄, 뿌리에서 빽빽하게 돋아나는 계란형 또는 구둣주걱 모양의 잎은 가장자리에 이 모양의 톱니가 있고, 뒷면은 은황색 가루를 덮어쓴 것 같습니다.
꽃은 4월 하순에서 시작하여 5월에 주로 피는데, 잎 사이에서 올라온 15cm 내외의 가늘고 긴 꽃줄기 끝에 엷은 자주색의 꽃 10여 송이가 우산 모양으로 달립니다.
설앵초는 한라산 선작지왓 주변에 주로 피는 대표적 고산식물이다. 사진=조용경
화관은 지름 10~15mm 내외이며, 끝은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오목하게 파여져 있습니다.
앵초는 앵두 ‘앵(櫻)’과 풀 ‘초(草)’에서 따온 이름인데 앵두나무꽃을 닮은 풀꽃이라는 의미인 듯합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잎 뒷면의 은황색 가루가 눈과 비슷하다 하여 눈 '설(雪)' 자가 붙어 이름이 '설앵초'가 되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독일의 전설에 의하면 병든 어머니를 위해 높은 산 성안에 있는 묘약을 찾아 나선 소녀가, 이 꽃송이를 꽂아서 굳게 닫힌 성문을 열고 약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앵초류의 꽃말이 '행운의 열쇠'라고 하네요.
8월에 열매를 맺는데, 삭과이며 씨앗은 원주형입니다.
제주도의 1500m 이상 고지, 햇빛이 잘 드는 바위틈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드물게 덕유산과 가야산 고지대에서도 관찰이 된다고 하네요.
연보라 혹은 연분홍색의 설앵초 꽃말은 행운의 열쇠이다. 사진=조용경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꽃의 시인 '유유'님은 이렇게 설앵초를 노래했습니다.
“친구라곤 바람밖에 없다네요/ 할 수 없죠/ 높은 산에서 태어나/ 그렇게 살아가야 할/ 그런 운명 타고 났으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하지요/ 그래도 가끔은/ 카메라 들고/ 일부러 찾아주는 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카레라를 들고 설앵초를 만나러 가는 친구님들!
예쁜 모습을 사진만 찍고, 제발 꺾거나 캐가지는 말아 주세요.
새해 벽두에 설앵초를 만나시는 모든 분께 금년 한 해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조용경 객원기자 / hansongp@gmail.com
야생화 사진작가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