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현대자동차그룹 주력사업이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현대제철, 현대로템 등 일부 계열사는 수익성이 나빠져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임원인사를 연중 수시 체계로 바꿔 연말 정기인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대신 CEO의 임기에 덜 구애받고 성과에 따른 인사를 강조하는 추세여서 계열사들의 올해 실적이 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25일 데이터뉴스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현대차그룹 상장 계열사 실적을 분석한 결과, 12개 중 8개 기업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이 11개 중 4개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대폭 개선됐다.
올해 현대차그룹의 실적 개선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의 주력인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 계열사가 이끌었다.
현대차는 3분기 누적 영업이익 2조4411억 원을 올려 27.1% 증가했다.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2조4222억 원)을 앞질렀다. 지난해 글로벌 수요 침체와 SUV 모델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출시 등으로 SUV 라인업을 확대하고 쏘나타, G90 등 신차 효과가 더해지며 수익성을 개선했다.
기아차는 지난해의 실적 개선 흐름을 올해까지 이어가면서 3분기 누적 영업이익 1조4192억 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보다 83.0% 증가했으며,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1조1575억 원)도 앞질렀다. 고수익 신차종 판매 확대와 믹스 개선을 통한 판매단가 상승, 북미 수익성 개선 등이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모비스는 3분기까지 1조7249억 원의 누적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5% 늘었다. 전기차 생산 증가에 따른 전동화 부품 공급 증가, 첨단 멀티미디어 제품 등 핵심 부품 공급 증가가 실적 상승을 부추겼다.
자동차 부품 계열사 현대위아는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2억 원에서 올해 818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314억 원 적자에서 400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완성차 물류 등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25.1% 증가했다. 현대오토에버(3분기 누적 영업이익 12.5% 증가), 현대차증권(37.8% 증가)도 뚜렷한 실적 상승을 보였다.
현대건설은 업황 부진에도 불구하고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실적지표를 모두 개선시켰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3분기 누적기준으로 20.9%나 늘렸다.
반면, 현대제철, 현대로템 등은 올해 수익성 악화를 경험했다. 현대제철은 3분기 누적 영업이익 4792억 원을 기록, 전년동기 대비 37.9% 감소했다. 영업이익 감소액은 3000억 원에 육박한다. 원재료 가격 상승,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철강업계 전반의 경영환경 악화가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주요 경쟁사에 비해 수익성 감소폭이 컸다.
철도사업을 하는 현대로템은 3분기 누적 133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로 전환했다. 당기순손실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해외 프로젝트 차질, 저가수주 여파 등으로 주력사업인 철도부문에서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사촌 정일선 사장이 이끄는 현대비앤지스틸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22.1% 줄었다. 당기순이익도 16.5% 감소했다. 이노션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2.9% 줄고 당기순손실은 1.5%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1일부로 임원 인사제도를 개편해 경영환경 및 사업전략 변화와 연계한 연중 수시인사 체계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올해는 연말 정기인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대신 실적에 연동한 인사조치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사업총괄에 선임된 이병호 사장이 1년 만에 교체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재임기간이나 임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성과주의 원칙에 따른 CEO 인사가 더 잦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CEO 중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이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과 이건용 현대로템 부사장은 경영 첫 해 큰 폭의 수익성 하락을 기록,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두 회사는 실적 저하와 맞물려 지난해 말 자리를 옮긴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과 유유철 현대로템 부회장의 거취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복심으로 불리며 현대차그룹 업무를 상당부분 총괄해온 김용환 현대·기아차 부회장이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도 현대로템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 모두 사내이사를 맡고 있지 않지만 실적 부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상장 계열사 대표 중 유일하게 내년 3월 사내이사 임기가 끝나는 이용배 현대차증권 사장은 올해 좋은 성적표를 받아 연임 가능성을 높였다. 현대차증권은 884억 원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8% 상승했다.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가장 오랜 기간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는 안건희 이노션 사장이 재임기간을 언제까지 이어갈지도 관심사다. 안건희 사장은 2009년 3월 이후 10년 이상 이노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 기간 이노션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것이 안 사장의 장기간 재임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올해는 2, 3분기 연속으로 전년 동기보다 영업이익이 줄면서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