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뉴스=이홍렬 대기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한국 재벌가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주-신동빈 형제 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그간 재벌가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여온 ‘골육상쟁(骨肉相爭)’, 일명 ‘왕자의 난’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201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맡고 있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며 롯데그룹 후계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같은 해 7월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복귀를 노렸으나 도리어 신 총괄회장마저 퇴진당했다. 이후 신격호·신동주·신동빈 3부자 간 고소고발이 오갔다. 그러다 지난해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대거 정리하며 신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최근 신 회장의 구속으로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서며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신 회장은 구속 후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롯데홀딩스와 치바롯데마린즈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이런 가운데 27일 열린 롯데지주를 포함한 롯데상사, 롯데지알에스, 롯데로지스틱스, 한국후지필름, 대홍기획, 롯데아이티테크 등의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한 합병 및 분할합병 안이 무사히 통과됨에 따라 경영권 분쟁 재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롯데그룹 형제 간 갈등은 신 총괄회장 때도 있었다. 신 총괄회장은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라면사업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반대를 뿌리치고 1965년 롯데공업에서 라면사업을 시작한 뒤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꿨다. 2010년 롯데마트가 롯데라면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두 형제 간의 갈등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5남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간 분쟁으로 그룹이 분리됐다. 2000년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 측 인사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경질하면서 시작된 두 형제 간 다툼은 정몽구 회장의 면직과 면직 취소로 이어지며 심화됐다. 이후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의 정주영 회장 육성이 공개되면서 정몽헌 회장이 그룹 본체인 현대그룹을 갖고,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삼성가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동생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유산 상속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언론을 통해 거친 말을 쏟아냈고, 삼성 측이 이맹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1·2심에서 연달아 패한 이맹희 회장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갈등은 마무리됐다.
금호그룹도 형제의 난이 그룹을 갈랐다. 박인천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인 박찬구 회장은 갈등을 벌이다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나뉘어졌다. 이후 소송으로 갈등을 지속하다 2016년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앞서 박인천 창업주도 금호타이어의 전신인 삼양타이어를 둘러싸고 동생과 갈등을 벌인 바 있다.
형제들이 번갈아가면서 그룹 회장을 맡는 것으로 유명한 두산그룹도 형제 간 다툼이 있었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은 2005년 박두병 창업주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차남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 자리를 삼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자 박용오 회장이 그룹의 편법 경영에 대한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그룹 및 가문에서 제명된 박용오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형제 간 공동경영 원칙은 부활했다.
효성그룹 형제의 난은 진행형이다. 2014년 조석래 창업주의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을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된 효성그룹 형제의 난은 이후 추가 소송이 이어지면서 5년째 지속되고 있다.
한편 경영권 분쟁이 없는 재벌가들도 있다. LG그룹이 대표적이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가 경영권을 승계받았고, 형제들은 계열분리 등을 통해 독립함으로써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SK그룹도 경영권을 놓고 사촌 간의 언쟁은 있었지만 최태원 회장 형제 간 갈등은 없었다. 다만 SK그룹은 LG그룹처럼 장자승계 원칙이 아닌 가족회의를 통해 최태원 회장이 회장 직을 위임받은 것이어서 향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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